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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 3년간의 암호풀이.-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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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lunc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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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암호풀이
-UNDELETE-
나는 도저히 암호를 풀 방법이 없었다.
통신을 통해 만났던 S, K, P대의 해커 몇명도 내 사정을 듣고 같이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아래아 한글 3.0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금성탕지였다.
떠나간 그녀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보름도 채 남지 않았던 어느날, 나는 술을 취하도록 마셨다.
그 때 친구 하나가 나에게 뜻밖의 얘기를 해 주었다.
"야, 종화야, 며칠전에 생각난건데 그 SJHR이란 파일말이야,
혹시 신조협려가 아닐까? "
"신조협려?"
"그래, 거 있잖아. 영웅문 2부. 무척 감동적이니까 안 읽어봤으면 한번 읽어 봐.
비디오로도 있는데."
"............"
SJHR. 신조협려. 말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럼 그 소설이 어떤 힌트일까?
나는 친구들과 헤어진후에 비틀거리면서 집에 들어 왔다.
서점에 들러 책을 사려다가 여섯권짜리라길래 주머니 사정상 다음에 사기로 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주현아, 보고싶다, 어디에 있니? 난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다가 지워버렸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왜 쓴단 말인가?
그러나 지운 순간 갑자기 후회스런 마음이 밀려왔다. 지우는 게 아닌데.
그래도 남겨둘텐데. 그 녀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나에겐 추억일텐데,
나는 백업파일을 찾아 편지를 복구했다.
그 때 내 머리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그래. 어쩌면 그럴수도 있어!
술이 확 깨였다.
나는 덜리는 손으로 책상서랍에서 그녀가 준 빨간 3.5인치 디스켓을 꺼냈다.
2년동안 어떤 문서도 저장하지 않고 그녀가 준 그대로 소중히 간직한
디스켓이였다. 나는 디스켓을 드라이브로 밀어 넣고 프롬프트를 a로 옮긴
후에 undelete를 쳤다.
잠시후 영문으로 된 설명과 함께 파일 ?INJOHR.HWP을 복구시킬 것인지를 묻는
메세지가 떴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면서 y(예스)를 눌렀다.
가끔 파일 이름을 정해놓았는데 나중에 바꾸고 싶을때가 있다.
그런 경우 rename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새이름으로'로 저장하고 옛날것을
지우는 경우도 많다. 그럴때 옛날 것은 undelete 하면 살아나게 마련이다.
내가 기대한 것은 그렇게 해서 살아나게 될 파일 중에 어쩌면 중요한 힌트가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어쩌면 같은 디스켓에 있는 파일이니까 SJHR.HWP 의 백업본이 있을 수도
있고, 그 것은 암호가 안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내용부터 쓰고, 고쳐쓰면서 엣날 것을 지우고, 그 다음에 암호를 지정하고...
이런 절차로 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 였다.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INJOHR.HWP란 파일이 있었던 것이다. ?INJOHR.HWP
은 아마 SJHR.HWP의 처음 이름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바꾸었겠지.
그렇다면 암호가 정해져 있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
나는 애써 침착하려고 하면서 복구한 파일을 불러들였다.
순간 나는 깜짝놀랐다.
차마 믿을 수 없는 말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의 사랑 종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너를 속인거......... 용서해줘.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너를 마지막으로 찾아갔을때 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어.
만약 그 사실을 말하면 네가 군대 생활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서..
......... 탈영할까봐서........... 어쩔수 없이 거짓말을 했던 거야.
그리고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어..
내가 죽을 목숨이란 것을 알면 넌 분명히 매일 술에 쩔어 살것 같았어..
그래서 일부러 암호를 장치하고, 그것을 풀게 노력하도록 유도한거야.
그러면 아마 넌 그것을 풀기위해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할 테니까.
토플얘기도 그래서 썼던 거였어.
네가 이것을 읽고 있을때 나는 이미 죽고 없을꺼야.
내가 일부러 거짓말로 처음 세글자를 틀리게 가르쳐 줬으니까.
아마 넌 한동안 헛수고를 했겠지.
하지만 연금술사가 금을 제조하는데 실패했어도 화학의 발전을 가져왔듯이,
너의 컴퓨터 실력은 무척 많이 발전했을거야.
아마 이건 먼 훗일 누군가에 의해 한글 3.0이 깨어질때 풀리겠지.
어쩌면 그 누군가가 너일 수도 있을 거고. 그랬음 좋겠다.
며칠전에 신조협려란 책을 읽었어. 한 여자가 자신이 죽으면 남자가 따라
죽을까봐 일부러 16년 후에 만나자고 거짓말을 남기고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너무 가슴아팠어.
그럼 열심히 잘살고 하늘나라에서 만나. 아니면 다음 생에서.............
우리 그땐 절대로 이렇게 빨리 헤어지지는 말자.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해.
너만을 사랑했던 주현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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