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3주 정도 "잠적의 출사표"를 사뿐히 날렸을 때만 해도,
참으로 단순하다 못해 순진하지 않았나 싶다.
영어를 십여 년이 넘게 쓰면서도 알지 못했던 건,
내 글 쓰는 스타일이 꽤나 된장냄새 물씬 풍기더란 것만은 아니었다.
동사와 동사 사이에 부사를 잔뜩 집어넣고 쓰기를 좋아한다는 점.
even though와 several에 광분하고, 영어식 철자를 즐겨 쓰며,
문학 싫어하는 놈 치고는 꽤나 문학적 표현을 자주 쓴다는 점.
노래를 좋아해 놀방파에서 활동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건,
단순히 키가 높아서 여자가수 노래만 부르더라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르고 싶은 노래보다는,
이별에 관한 노래를 더 애절하게 잘 부른다는 사실을.
남들 앞에서는 웃기고 재미난 노래를 부르지만,
정작 본인의 진짜 18번은 아프고 서러운 노래라는 사실을.
소심한 성격에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직은 서투르지만,
김광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만큼 나름 성숙했다는 사실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건,
그냥 성격이 좀 유별나고 독특하다는 것만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잘 하기는 하지만 정작 잘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못하더라는,
Cool하고 재기넘치며 나름 진지한 면도 있지만, 상처에 유난히 쓰려하더라는,
가혹하리만치 남에게 잔인한 동시에, 고독 아래 모든 걸 혼자 안고 아파하더라는.
살면서 지금껏 무엇에 두려워해본 적도, 어려워해본 적도 없지만,
살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내 인생을 걸어야겠다 싶어 올인을 했다.
(물론 링크까지 치웠으니 이 글을 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마는.)
그 사람을 만난 것은 내 일생 일대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상처를 오히려 키운 것 같아 죄책감도 많지만,
동시에 그 사람을 통해 나 역시 삶의 모멘텀을 얻은 것만은 분명하니까.
좋은 사람이 생겼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참 나쁜 친구다.
어쩌면 이제는 그런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것인지 두렵기까지 하다.
살면서 대학교 다닐 때처럼 가슴떨리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
아니 지금도 내게는 현재진행형일수밖에 없는 그것.
사랑에 인색하고 사랑에 굶주린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가슴벅차다.
메신저 제목에 긴장하고, 미니홈피 소개글에 두려워하던 그 느낌.
정말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꽃바구니 몇 개 보내는 것뿐이란 사실에 절망했고,
그 사람보다는 여전히 내가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으며,
그에게 한 약속이 공치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내 경솔함을 원망한다.
어렵게 알게 된 좋은 동호회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두렵고,
개인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그와 척을 지는 것도 두렵지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역시 내가 그에게 어떤 입장일까 하는 것.
사람에게서 정말 서투른 점은 바로 그럴 때일수록 조금씩 뒤로 물러나더라는.
어쨌든 이제 나는 주사위를 던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애써준 수많은 지기들.
그리고 귀찮고 어려운 일에 은근히 수고를 아끼지 않아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