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송지나 씨의 기고였는데
'그래! 바로 이 글이야!'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바라던 그런 글이였던 거야.
비단 어머니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사람들이 다 그랬으면 좋겠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
그런 '믿음'이야말로 사랑의 근본일테니까~ ^^*
"날 믿어줘~ ^^*"
"우리 딸이 하는 일이니까"
글 : 송지나 / 드라마 '모래시계' 작가
어머니의 교육관은 '무조건 믿는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내 딸이니까, 우리 지나가 하는 일이니까...'
어머니는 언제나 나를 지원하는 유일한 나의 편이었다.
중학교때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교문 앞에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영화를 좋아했던 어머니는 나와 함께 영화관 가는 것이 취미였는데,
연소자 관람불가도 나의 손을 잡고 태연하게 들어가시곤 했다.
오히려 내가 불안해져서 끙끙거리면
어머니는 "보호자와 같이니까 괜찮아" 하며
당당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하루에 세 편까지 영화를 보기도 했던 어머니 덕분에
난 확실한 비디오 세대로 자라났다.
그리고 연소자 관람불가의 작품들을 일찍이 통달한 덕분에
사춘기의 혼란 같은 것에는 초연했던 게 아닌가 자평하고 있다.
어른이 된 다음 어머니에게 불평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어린애한테 그런 걸 보여주면 어쩌려고 하셨수?"
그러면 어머니는 태연히 답하신다.
"우리 딸이 보는 건데, 뭐."
책벌레인 나를 위해 어머니는 이웃을 돌아다니며 책을 빌려다주셨고,
골목대장인 내가 따오는 구슬의 숫자를 세어주셨다.
왕구슬을 백 개 모았을 때 어머니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대학에 안 가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커튼을 막아 글쓰는 방을 만들어주셨고,
이제 대학을 가야겠다고 했을 때는 어려운 돈을 모아 학원비를 대주셨다.
대학시절 데모대에 쫓길 때에도 어머니는 우리 딸이 하는 거니까
당연히 믿어주셨다.
그건 대단히 무서운 교육관이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나는
어머니의 '우리 지나가 하는 거니까' 라고 하는 주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머니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내가 하는 일은
바르고 당당해야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려고 애쓴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들을 내 부속품이나 내 것이 아닌 그 아이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오늘도 아이는 일인용 헬리콥터를 만든다면서 온갖 고물을 모아왔다.
어머니가 나에게 그러했을 것처럼 나는 아이의 조수가 되어서
녹슨 철물을 갈아내 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이가 헬리콥터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