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면, 글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그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다시 '헤쳐 모여'를
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또 다른 우리들만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다 똑같은 것.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싶다.
개인적인 솔직한 견해는,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름대로
바빠지고 난 후 좀 우스운 변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라며 말꼬리를 흐리게 될 수 밖에는 없다는 점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이러한 때는 반드시 온다. 들르고 싶을 때
오는 그런 곳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가치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칼사사 그리고 그 슈퍼셋인 칼라 그 외형적인
모습은 변할 수 밖에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변한다.
우리 96년도에 처음 이 모임을 만들었을 때의 가치는 지금도
변함은 없다. '우리는 모여야 한다'는 강제성이 전과는 달리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왜 우리가 모여야 하는가'에 대한
것에 의문 부호를 던지는 이도 많지 않을까.
정체성, 그 무언가 다른 것. 그래 그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스를 수는 없다. 나혼자 그 가치를 지켜간다고 이 거대한
공룡 칼라와 칼사사가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실은, 작금의 상황에서도 보다시피 변하고 있다. 우리가 '정체성'을
논하고 '존폐'를 논하는 것은 96년도에 세웠던 외형적인 모습과
틀이 점점 붕괴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모의 참여 인원은
나날이 줄어가고 있으며, 96년도부터 꾸준히 활동했던 사람들은
점점 줄고, 그리고 글을 쓰는 횟수 또한 줄어들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칼라와 칼사사의 주류, 비주류 논쟁은 심화될 수
밖에는 없다. 그 이전, 96년 97년도에 칼사사와 칼라가 심각하게
대립한다거나 운영진이 정모에 참석하지 않은 소모임에 대해 제제
조치를 한 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 그 연유는? 96년도에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정모에 1백명이
참석했는데, 지금은 40명 참석도 힘들다는 '숫자 놀음'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며 우리는 이 숫자에 얽매여 변해가는
상황을 판단치 못하고 현상 유지를 하려 하지는 않았는가.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칼사사 내부도
심각한 변화를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96년도 결성 당시의 인원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적다. 몇몇은 군대에, 몇몇은
개인적 이유로, 그리고 또 몇몇은 의도적 회피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왜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두려워해야 할까.
물론, 우리는 이해집단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뭉쳤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연하지만 지금와서 되돌아보니 우리가 뭉쳤던
연유는, 나처럼 이렇게 학교를 떠나 다른 짓거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대학생의 널널함을 주체할 길이 없어 모임을
통해 갈증을 해소했고, 젊은 사람들의 객기-특정 아이디를 연상하려
하는 것은 아님(--;)-에 의해 뭉쳤다는 것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3때 이럴 수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나중에 하루하루
끼니 걱정하며, 직장에서 모가지 걱정하며 살 때 우리가 96학번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에 한 모임에 있었다는 것을 명분으로 모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변하고 있다. 가치도 변하고 있다. 모임의 가치도 점점 변한다.
하지만 기본적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모임의 가치가 변해가는
모습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96학번이라는 이름으로, 칼라의 일원으로-혹은 그렇지 않든간에-
칼사사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지나면 칼사사의 구성원이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의 나이먹음과
함께 바뀌는 가치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단지 우리가 96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다른 학번과 달라야하기 때문에가 아닌, 이제 어느 정도 한가하니
우리 모여서 이야기하자는-그 주제는 96년도와는 다를 것이다-쪽으로
변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내가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지니게 된 것도,
마지막 학기의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그나마 먹고 살 걱정을 어느 정도
덜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모임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겠지.
이야기가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칼사사는
죽었다는 이야기의 시작이 칼라는 죽었다는 이야기의 시작이 하나의
문제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니라 믿는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항일테고
그 복합적인 사항 중의 하나는, 지금의 현실이 이러할진데 예전
우리가 처음 모일 때의 가치를 바꾸지 않고 지속적으로 적용하려 하는
데에서 오는 괴리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고민해야 하는 사항이긴 하다. 'Where we go?'라는 주제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건 좋은데, 현실 생각도 하면서, 결론을
내려보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