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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쪼은 야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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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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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뒷모습
오늘의 만남 * 이 희 재 님(패션모델)
나에게는 일흔 여섯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오십대 같아 보인다는 근사한
아버지가 게시다. 훤칠한 키에 곧은 자세, 정갈한 성품, 게다가 목소리
까지 정정해 모르는 사람들은 내 애인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늘 청춘이라지만 예순 다섯의 나이에 운전면허증
을 따낸 사람이 그리 흔할까. 아버지는 식구들 모르게 운전학원에 등록
하여 세 번씩 떨어지면서도 말씀 한 번 안하셨고, 합격한 후에도 "나,
면허증 땄다." 는 한 마디가 끝이셨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단박에 이
십 년을 당뇨병으로 고생하다 미국 여행 중에 쓰러지기까지 하신 어머니
를 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투석 치료를 위해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을 다녀야 하
는 어머니를 좀더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어머니가 앓고 있는 당뇨병에 대한 지식을 담당
의사 만큼이나 잘 익히셨고, 아버지가 들고 다니는 007가방에는 늘 청진기
와 혈압계가 들어있었다. 시간을 맞춰 어머니에게 약을 먹이고 매번 혈당을
체크하여 직접 주사까지 놓으며 식이요법까지 신경 쓰신 아버지,그런 일들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아버지는 언제나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간호하셨다.
지난날 두분의 부부애는 각별했다. 가끔 부모님은 어린 우리들에게 장난스
런 레슬링 게임의 심판을 부탁하곤 했는데, 그때 두 분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남들 앞에서 다정하게 손잡고 다
니는 것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마 우리 형
제들의 우애가 유별나게 깊은 것도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자라서일 것이다.
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항상 밝은 웃
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와 늘 함께하고 그것을 무척 기뻐하셨기 때문
인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복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의사가 우리에게 어머니한테 마지막
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극구 어머니의 모습을 보
지 않겠다고 고집하셨다. 두 분이 어떻게 지내셨는데. 다시는 볼 수 없는 어
머니를 왜 안보시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응급실 밖으로 " 아버지 왜 그러세요? 빨리 오세요! " 하고 외쳤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다급하고 울음이 섞인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우두커
니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을 그 전에
그리고 그 후로도 볼 수 없었기에, 나는 그 순간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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