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서 집에 가기 위해 잠수함을 탔다-여객선처럼 크다. 약간 고급스러운 느낌
이 들고, 유람용으로도 탄다 (유람용으로는 내게 좀 비싸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
은 유람을 위해 탄 것 같다. 흔히들 개인 잠수정을 가지고 있는듯 했다. 타자마자
어떤 남자가 자기네들끼리, 자기 여자 친구가 개인 잠수정을 갖고 이리로 쫓아오
기로 했는데 배의 승무원(나이트클럽 웨이터를 연상시킨다)에게 말해서 배 위로
끌어올릴 거라고 말한다. 계급적인 열등감을 느낀다. (이 남자들은 승필이, 칼라
에서 처음 만난 칼라의 남자애들, 서원의 영어 잘하던 여자 등을 연상시킨다)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을 보고 이를 닦으려고 화장실을 찾는다. 기차에서처럼 객
차 앞뒤에 하나씩 붙어 있는데, 마치 엠티온 사람들이 많은 기차에서처럼 화장실
앞은 줄선 남녀들이 꽤 있다. (특히 여자들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느낀다. 앞쪽
객차에 붙은 화장실에 갔다 사람이 있어서 뒤로 왔다. 어찌어찌 나만 기다리게
되었는데 내 뒤에 키가 크고 머리채가 길고 검은 여자 하나가 줄을 선다. 불편해
어쩔 줄 몰랐다. 그가 이를 닦으면서 기다리길래 나도 벽에 걸린 거울에서 치약
을 꺼내(우리집의 치약은 거울의 칫솔통에 들어 있다) 불편한 가운데 이를 닦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나는 물이 있어야 이를
닦기 시작한다)
결국 치약이 목으로 넘어갈 것 같아서 얼른 물을 찾다가 조금쯤은 친근하고 편
한 느낌을 주는 남자 하나를 만난다. 그에게 사람들이 잠수정을 갖고 이 잠수함
을 쫓아오려고 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내게도 좋진 않지만 작은 잠수정이 있어서
심해에선 압력이 강해서 잠수정이 못 쫓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내가 보상으로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느끼진 못했다. 그는 나의 말을 그
렇게 진지하게 듣지 않고 그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그의 말이 어쩐지 사실같
고 그래서 기분이 상한다.
아까 봐둔, 화장실 근처 문밖의 상수도에서 호스를 갖고 입을 부셨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 처음 이 배에 탔을 때 언틋 본 사람들과 비슷한 집단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들이 두려웠다. 호스와 그 중에 가장 호스 가까이 앉은
사람의 거리가 얼마 안 되어 나는 그만 그의 등을 밟았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가 인상을 펴지 않길래 나는 두려웠고 굽신거리며 거듭 미안하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다. 경진이 같다.
그가 나에게 고등학교 때의 별명을 부른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를 쉽게 생
각하지 않았지만 기숙사에서는 이 별명도 보태어 은연중에 무시받는 느낌을 가
지면서 한편으로 그것을 거부했다) 기분이 상한다. 그리고 그가 경진이인지 확
실히 모르겠다. 경진이 왼쪽 앞으로 얼굴빛이 다소 검고 머리를 기른-그러니까
그들의 한 사람으로 보이는-, 약간은 편안한 사람이 앉아 있길래 (그는 찬희를
연상시킨다) 그에게 경진이와 같은 과인지 물었다. 경진이가 연대 인문학부에
갔다는 것을 들었지만 직접 그러냐고 묻질 못하고, 먼저 그에게 경진이와 같은
과냐고 묻고 다시 연대 간 내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가 현석이를 안다.
그들의 이야기를 불편하게 듣게 되었는데 갑자기 은각이 뭐냐는 이야기가 나온
다. 이 말은 언젠가 꿈에서 접한 말인 것 같다. 어느 전래 동화나 옛이야기에
나온 말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이런 말이 나오는 그런 민담, 동화,
전설은 기억 안 나고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생각나지 않는다. 막 생각날
것 같으면서도 아닐 거 같은 느낌이다. 경진이가 나에게 이 말을 생각하도록 기
대를 한다 (그가 재수할 때 난 책 읽었으니 이런 연상을 한 것 같다). 다소 불
편함을 누른 것 같고 이 말에 골몰하다 잠을 깬다.
부연- 나는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감정이 상당히 미숙한 편이다. 어
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으면 꼭 책을 읽는 것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문제를 생각할 때 지나치게 지적인 분석만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에도 내 감정은 저절로 자제가 되고, 표현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나는 감
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무시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완전해 지기
위해서 감정을 콘트롤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 무시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무시받았던 것이다) 감정은 억눌리거나 발현
이 보류되었다. 이 때문에 계속해서 사고만 사용되었다. 대신, 감정은 무의식
으로 들어가서 멀어진 끝에 점점 위험하게 되고 있는 것도 같다.
꿈에서는 현실에서 내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자신감이 없어지는지 그 메커니
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요즘은 바로 이런 점을 나의 잘나지 못한 점으로 인정
하려고 노력하고 이것이 강한 거부감과 함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동성에 대해서도 꿈에서처럼 자신감을 잃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으며 이성
에 대해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이성에 대해서만 그렇다고 생각해 왔는
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그
러나 이 상황에서 이성에 의존적이 되었으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 까닭을
이 자신감 결여의 원인과 결부시킨 것 같다.
은각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해 보면, 은각은 이 문제(못함)를
기만하기 위한 나의 노력을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