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게도 큰 소득이 없고 그 역시도
큰 소득이 없음은 분명하다. 하루하루가 급한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필요한 것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그는 오늘 전화를 건다고 하였건만 전화를 걸진 않았다. 그로서도
전화걸기가 매우 껄끄러웠으리라. 무엇보다도 그에게 닥친 예기치 않은
일들로 당사자인 그는 정말 머리가 아플 것임은 틀림없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그렇지 않은 측면에서 그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오히려 내게 걸려올 전화가 더욱더 나를 불안케 만든다.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기에 11년이라는 시간동안 그가 내게 쌓아온 신뢰와
그 밖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