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나 시는 몇, 본 적이 있지만 장정
일의 소설은 처음인지라 그의 원래 스타일이 이런 건지 아님
이 소설만이 독특했던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보트
하우스,라는 소설은 한마디로 독특했다. 물론 작품 속에 작
가 자신의 모습을 얼렁뚱땅 집어넣은 소설들은 다소 있었지
만 이처럼 완벽한 혼란을 창출해내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
었다.
그렇지만 애초에 이 책을 선물 받지 않았었다면 난 아마도
장정일의 소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지 않았을 게
다. 혹자는 내게 넌 틀림없이 장정일을 좋아할 것 같아,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사실은 그와 정반대인 편이다. 유달리 장정
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아예 관심이 없는 편에
속하지만 좋다, 싫다, 양분하자면 아마도 후자쪽이 될 것도
같다.
작가의 소설 쓰는 고통이 모티브로서 드러나 있기도 했지
만 소설 자체는 쉽게 쓰여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인위적인 설정을 제거한 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여 그랬나
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오컬티즘 냄새를 푹푹 풍기고 있었는데
판타지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서 무언가
새롭고 독특하며 환상적인 맛을 느끼게 하는 방법은 오직 기
묘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밖에 없는 듯 하여 이해한다.
그렇지만 오컬티즘이 문학의 새로운 주류가 되는 건 싫다.
Hard Core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 Hard Core를 더 좋아했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대개 오컬티즘은 특정한 상징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데 이 보트하우스,라는 소설 속에서 난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일단은 내 문학적 소양의 가벼움을 탓하도록
하겠고.
장정일,이라는 작가의 깊이를 난 인정한다. 변형된 영화들
처럼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서,에 보다는 무언가 이야기하기
위해서,에 중점을 뒀으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이 한 편의 소
설에 머리 싸매고 고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애초에 장정
일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 넘쳐나는 사람들의 개성을 모조리 받아줄 수는 없는 일
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대용량의 두뇌를 가진 인
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도 터져 버리고 말게다. 그렇다고
무시할 생각도 없으니 이럴 땐 그냥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
다. 이른바 해병대 용어로 좆빨아라. --;
장정일은 그냥 내비두면 된다. 자기 식대로 살아가다가 그
를 이해하는 사람들 속에서 영웅이 되면 되고, 난 내 식대로
살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채정안이나 꼬셔내면 된다. 그러
고 보면 세상, 꼭 살기 어려운 일은 아닌 것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