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주 맛있는 살구소주를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 테
이블의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대여섯 명 정도 모여 술을 마
시고 있는 그들 사이엔 여자가 반 정도 되었었는데 시간이
늦었기 때문인지 아님 구린 남자들과는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일순간에 여자들이 모두 가버려 남은 남자
셋이서 소주를 마시고 있던 거였다. 남은 남자 셋. 그들의
얼굴이 참으로 선명하다. 술에 취해 벌겋게 상기된 얼굴, 그
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그들은 치열하게 서로 이야기했다.
술이 주는 쓸데없는 진지함, 그런 거였을 거라 생각한다. 깨
어나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 술에 취해있
을 당시에는 삶의 모든 것이지 않았던가.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싶었다. 내 음주 스타일은 죽을 때
까지 무조건 마시는 건데 여자들과 마시면 그게 되지 않아
성에 차지 않는다. 태초에 게으르게 창조된 난 죽을똥말똥
술을 마신 후에 아무 데서나 엎어져 자는 걸 낙으로 살아가
는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들과의 술자리밖에 마련되
지 않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오만함을 방끗 세워본
다. --;
어쨌든 난쟁이빤쑤와 똥자루,에 모두 집결한 시간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처음부터 시간약속을 하지 않아
널널한 성훈은 무진장 기다렸다고 하고 내가 도착했을 무렵
선웅과 정목이 있었고 잠시 후 영재가 힘찬 구보로 등장했
다.
1차를 마친 후 두꺼비핵교,로 2차를 떱고, 3차는 한 민속
주점, 4차는 웬일이니, 같은 소량저가 주점. 장구한 싸움이
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이 24이나 먹은 우리는 왜 아직
도 그리 개구쟁이인지 모르겠다. 다들 얼큰히 술에 취했을
그 때는 정말 진지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대안이 없
다,며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그렇지만 역시, 맨
정신에 생각해 보면 24살에 어울리는 짓은 아니었던 거 같
다. 물론 아주 스릴있고, 아주 재미있었지만. ^^;
정목은 더드미,란 자신의 닉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끊임
없이 매만졌다. 선웅이 그 주된 타겟이었는데 정목은 처음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여자친구 자랑을 하더니만 잠시 후 그
런데 요즘 남자가 자꾸 좋아져,란 말을 시작으로 선웅의 가
슴, 엉덩이를 마구 주물러댔다. 심지어 팍삭 삭은 영재까지
매만질 정도니 정목의 병은 중증인 것도 같았다. 게다가 지
나가는 여자를 괜히 더듬는 짓이라든가 그 외 갖은 변태적
기행으로 우리를 역겹게 했다. 꺄악. 그런데 그것 가지고 이
시대의 군대가 젊은이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까닭은 정목은 입대 이전부터 그래왔으니 제 아무리
강력한 군대라도 서열 2위, 근 말년 병장에게 영향을 끼칠
순 없었나보다.
그리고 난 마지막 남은 타이틀, 여신,을 획득했다. 초반
성훈은 몸이 좋지 않다며 술에 약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아니
나 다를까 조금 술을 마시더니만 원래 스타일을 찾아버린 게
다. 그리하여 다시금 대작이 시작되었지만 역시 성훈은 내
적수가 못 되었다. 자, 아무리 억울해 해 보거라. 이미 선웅
이 나의 승리로 판정내렸노니라. 그리하여 난 이제 통합 챔
피언이 되었다. 주신, 불사신, 여신, 세 개의 타이틀을 모두
획득하여 酒林평정을 이룩하였으며 광활한 주림의 초대 황제
로 등극하오니 만 천하의 백성들은 고개를 숙여 나를 경배할
지어다. 냐하. --+
영재와 정목이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또
우리의 주특기, 술 취해 신림동 거리의 여자들 찝쩍대기도
하지 못해 역시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느껴본 남자들의 멋이
있는 그런 자리였다.
그리고 선웅이 칼사사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는
데 주도적 역할은 선웅이 맡을 예정이다. 이번 정모 때 란희
를 중심으로 다시 얘기해 보겠지만 다들 특정 분야를 맡아
힘을 모은다면 멋진 곳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
문 칼사사의 정식 명칭은 Calsasa 혹은 Calsa2, Cal42,
Cal44 정도에서 함께 생각해 봐야겠다. 어쨌든 k 대신에 c를
쓰는 게 낫다고 입을 맞췄다. 이유 없이 선웅과 정목은 k가
싫댄다. --+
성훈 : 음하하.
정목 :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고, 얼마 남지 않는 군대생활
멋지게 보내도록 하거라. 제대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
선웅 : 행운이 깃들길 빈다. 거룩하신 탄트라교 탄트라토
템의 이름으로. 일이든 사랑이든. 그리고 이해한다.
영재 : 아무래도 넌 군바리로 말뚝박았어야하는 건데...
그 사진, 정말 수려했다. 마치 국방부 한 장교의 모습 같았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