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문화 (2005-06-08)

작성자  
   achor ( Hit: 2124 Vote: 13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얼마 전 MBC TV 일밤의 한 코너에서 산수 문제를 잘못 계산했던 게 방송을 탔나 보다.
그런 실수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 그러겠거니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인터넷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건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고,
결국 이것은 내게 인간에 대한 회의감마저 느껴지게 했다.

문제는 이랬다.
111+1x2 가 얼마냐는 것이었다.
답은 당연하게도 113이겠지만 방송에서는 224라고 나왔던 것이다.

문제 자체는 보다시피 논평하거나 재고할 가치도 없이
이른바 초딩 수준의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저수준이다.

그러나 많이 이해해 줘서,
어떤 이는 산수를 태어나면서부터 싫어했고, 관심이 없었다고 쳐보자.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을 살지 못할 만큼의 문제는 아니리라 본다.
그리하여 그는 111+1x2를 그저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계산하여 224라는 값을 얻었다고 쳐보자.

그런 자신을 알고 있다면
잠잖고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인터넷에서 무수하게 당연하게도 224가 답이라는 의견이 끊임 없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괄호가 없을 경우엔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계산하는 게 맞는 것이라는,
나름의 이론까지도 제시하며 자신만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이들이 인터넷 게시판의 일부나마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인터넷에 대한 신뢰,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과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함께 생각할 수 있으랴.

오해할 필요도 없고, 오버할 필요도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학업적인 지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결코 아니다.
단지 111+1x2를 계산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구별하여 말하는 센스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주 기본적인 교양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상대,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지 못한 것을 구분 못하는 상대와 논쟁하거나 토론하는 것만큼 고달픈 일이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이 느끼고 있다.

물론 이와는 상반되게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고 맹신하여
고립된 생각 속에서 답답함만을 연출하는 또다른 무식한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지만.



2.
지난 8일에는 내 취미인 리니지2 세계 속에서 실제적인 살인미수사건이 일어났다.
게임 속에서 붙은 분쟁으로 실제로 찾아가 흉기로 찌른 사건이다.

나 역시도 리니지2를 하고는 있지만
이 속의 사람들은 별로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많다.

언젠가 말했다시피 사회적으로 인덕이나 교양을 갖춘 이들이 취미로 리니지2를 택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이들은 게임 속에서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기려 할 뿐이고,

실제로 게임 속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광적으로 게임에 열중해 있는, 위 사건의 주인공들과 같은 이들이 된다.

이런 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교양조차 갖춰져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상식과 예의범절, 타인을 위한 배려와 공동체적 의식 같은 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선하다, 악하다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이가 위기에 처한 타인을 돕든, 말든 그런 건 상관 없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행동들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타인을 어려움에 빠트린 채 자신만의 안위만 추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타인에게 미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리니지2의 세계는
너무나도 저급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이런 이들과 함께 취미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은,
역시 좀 고달픈 일이 되겠다.

그리하여 2년이란 시간동안 유지하고 있는 취미이건만
게임 속에서 큰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내게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리니지2는 현실과 많은 유사성이 있는데
다만 이것이 내가 처해 있는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또다른 사람들의 문화인 듯 하여
나름대로의 새로움은 간혹 찾을 수 있긴 하다. --;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10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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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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