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쿠를 기다리며... (2009-01-24)

작성자  
   achor ( Hit: 2918 Vote: 7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아직 내겐 평소의 토요일과 별 다름은 없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하며 여유를 즐긴다.
점심은 라면이고, 저녁은 피자다.
하나를 시켰더니 1+1, 2판이 온다.
소식하는 내가 홀로 먹기엔 벅찬 양이다. 꺼억, 배가 터질려고 한다.
소소한 삶의 행복이 느껴진다.

지난 밤 눈이 많이 왔나 보다.
TV에서는 연신 대설로 인한 최악의 고속도로 상황을 알려준다.
창밖을 슬쩍 내다보니 소폭히 쌓여있는 눈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추운 차 안에서 극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눈온 세상은 새삼 평화로운 풍경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오늘은 좀 특별하다.
근 한 달 전부터 약속 잡혀 있던 란쿠데빌 레이드.

길게는 24시간 이상도 걸린다는 이 짓이
내게도 어느새 16시간째다.
내내 이토록 치명적인 비효율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오늘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될 지 모르기에 얼마가 걸리든 끝장은 봐야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사실 좀 멍청해 보이긴 한다.


마냥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다.
빨래도 다 했고, 배도 부르다.
채널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볼만한 걸 찾는다.

선택은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
아! 다시 봐도 감동이다.
엄청난 순간이었다. 월드컵 4강. 상상조차 불가능 했던 일이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니
무려 7년 전 이야기.
그 시절엔 다음 월드컵이 서른에 있다는 게 작은 우울함이었다.
아이를 목마 태우고 부인과 점잖게 경기보는 모습만 연상됐었다.

그러나 시간은 어느덧 34세의 월드컵을 기다리는 입장에 도달해 있다.
비슷비슷한 붉은 티에 나름의 개성을 불어 넣고 함께 소리 지르며 열광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쯤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몇 해 전 오늘,의 글이 나오고 있는 내 홈페이지에서 오늘은
친구들과 이런저런 가명으로 사랑을 이야기 했던 기록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성, 효리, 민수, 민희...
그 시절 그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주노명베이커리의, 아내를 너무 사랑하기에 양다리를 이해할 수 있다며 성숙한 사랑을 갈망했던 민수는
햇수로 어느덧 결혼 6년 차.
너무 늙어버려서, 젊은 열정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립다던, 보고 싶다던 효리는
햇수로 어느덧 결혼 3년 차.

나름의 삶을 잘들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지만 9년 전 사랑에 관해 이렇쿵 저렇쿵 소근댔던 기억은 완전히 잊었으리라.


란쿠는 아직 감감 무소식이고
세상은 여전히 하얀 눈에 소폭히 담겨져 있으며
시간은 잘도 흘러만 가누나.

- achor


본문 내용은 5,71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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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2009-02-03 19:57:53
32시간만에 완료!

 achor Empire2016-01-27 01:34:24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멋진 그림이다. 남겨 놓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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