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의 결혼식에 갔다 (2007-07-25)

작성자  
   achor ( Hit: 578 Vote: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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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1.
그는 그녀의 결혼식에 갔다.

"내 결혼식에 네가 정말로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몰라."
"전에는 가장 슬픈 장면이었는데, 요즘은 가장 감미롭고 행복한 결혼식 풍경으로 바뀌었어." 내가 말했다.
"뭐가?"
"애인이 지겨보는 가운데 결혼식 올리는 거 말야."
"후훗." 그녀가 웃었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없었지."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2.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물론 어느 친구의 결혼식 때처럼 전날의 과음으로 늦잠을 자는 등의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일찌감치 깨어있었으니.
짐짓 심각하게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렇지만 이제 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그저
그 먼 곳까지 가는 게 좀 귀찮았던 것 뿐이다.

낯이 두꺼운 편인 내가 단지 과거에 애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나쁜 관계도 아닌 데다가 직접 초대까지 받은 그 결혼식에 가지 않을 까닭은 없었다.
어느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그녀가 식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만 본 채 돌아오는 장면은
당시에도 상상하고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내가 외출을 극도로 귀찮아 하던 시절이라
경기 동남의 어느 곳에서 열리는 그 결혼식장까지 가는 걸 감당해 내기 힘들었던 게다.

당연하게도 그 때의 나는
옛 애인의 결혼식에 내가 가는 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상대에 대한 배려의 의미로 가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확실히 알겠다.

현실은 결코 영화처럼 로맨틱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사랑했던 옛 애인의 결혼은 슬픔도,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아닌
그저 귀찮음 뿐이었던 게다.



3.
31세.
얘네들 언제 결혼하나 싶어했던 주변 친구들이
이제는 하나 둘 결혼 이야기가 들려온다.

언제까지나 불쑥 전화하면 술 한 잔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네들인데
혹시 애인이 생겨 내가 만나자고 하는 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먼저 연락해 본 지도 수 년이 되어버렸다.

과거 툭 하면 읊조리던
내가 만날 최고의 이상형은, 이미 만났던 것인지 모르겠다던 그 말이
최면처럼 내게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들어온다.

아직 결혼식에 갈 것인지, 가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지는 못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그처럼 아무렇지 않게 가거나
어느 영화에서처럼 뒷모습만 보고 돌아오거나
뭐든 좋다.
다만 귀찮아서 가지 않게 되는 일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내 과거의 사랑을 부셔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 achor


본문 내용은 6,33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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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쁜현쥬님2007-07-28 23:38:22
수정기능이 없는건가; 그래서 결혼식은 간거야 ? 뒷이야기도해죠 . 궁금해 .ㅎㅎ . 정말 오랫만에 들어온것같은데 , 어디다 글을 남겨야할지 몰라서 .

 achor2007-07-29 01:01:29
오랜만이네.
결혼식은 8월. 아직 고심 중.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조낸 섹시해서 내 옛 애인이자 8월의 신부인 그녀가 약혼된 그를 버린 채 내게 다시 사랑을 고백한다면 정말이지 큰 일이라서 가는 게 쉽지 않아. -__-;
그럼에도 너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꼭 오라고 하는 통에 간다고 약속은 또 해놔서. 여전히 고민이네. 내 결혼식에 내 신부 옛 남친이 온다는 게 나로선 그리 기분 좋을 건 아니라서 안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수정 기능은 없다. -0-

 achor2007-08-22 16:25:14
결국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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