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그콘서트 공개녹화와 노동자 인권 궐기대회가 동시에 열렸던 그 날의 기억은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http://empire.achor.net/blog/327
오래도 하고 있다, 개그콘서트.
그 시절 노동자의 인권보다는 개그콘서트의 공개녹화에 더 관심 있어 하던 80년대 생의 모습에 난처해 했으면서도
지금은 나 역시도 즐겁게 보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개그콘서트의 코너 중
가장 시사적인 개그라 할 수 있는 봉숭아학당 동혁이형이
가장 보기 싫은 개그라는 점은 역설적인 면도 있겠다.
2.
지난 3월, 보수언론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가
동혁이형을 선동적 개그라고 지적했던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나는 현 정부의 언론장악적인 행태에 분명히 반대하고 있고,
당연하게도 방송개혁시민연대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동혁이형에 대해 바라보고 있는 관점은 비슷한 면이 있는 것도 같다.
나는 동혁이형의 어쭙잖은 논리를 보고 있는 게 싫다.
그의 단순화, 희화화 시킨 사안은 사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순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쉽게 쉽게 내놓은 해답들은 비현실적이고, 무지한 소산인 경우가 많다.
사안을 잘 모른 채 그의 이야기만 들은 사람의 경우에는
자칫 그의 단순화한 설명이 사안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덕분에 정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덜한 이들로 하여금 관심을 유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순 있겠으나
웃음을 위해 보고 있는 개그콘서트에서
웃기지도 않고, 어설프기만 한 그, 혹은 방송작가의 주의주장을 봐야 한다는 게 억울하다.
시사를 개그로 풀 것이라면
사안을 단순화 시켜 큰 목소리로 쿨하게 내질러 버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왜 문제인지를 명료하게 정의하여 적절한 비유로 해석해 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3.
자, 친절한 나는 네 반론에도 답을 준다.
반론1: 안 보면 되지 않냐?
물론 안 보면 된다.
그러나 TV수신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기도 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영방송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권리는 갖고 있기도 하다.
보기 싫은 것을 보기 싫다고 이야기 하고, 그래서 보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이지
안 보고 마는 것은 차선책일 뿐이다.
반론2: 니가 어쭙잖은 지식으로 여기 써놓는 글도 마찬가지 아니냐?
맞다. 동혁이형도 어쭙잖고, 나도 어쭙잖다.
차이는 나는 내 일기장에 쓰는 것이고, 동혁이형은 방송이라는 공공재에 쓰고 있다는 것이겠다.
나는 그저 이미 쓰레기가 가득 한 넷상에 조금 더 쓰레기를 추가하는 정도의 과오지만
동혁이형은 한정적인 공동의 재화를 독단적으로 낭비해 버리는 과오란 차이가 있는 게다.
4.
2000년 5월 3일에 했던 그 고민,
개그콘서트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다.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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