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크게 켜고... (200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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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510 Vote: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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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어쩐지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져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듣고 있다.
영화음악이나 나이지리아 민속음악 등을 듣다 보니 어느덧 벌써 29시.
내일은 꼭 학교에 가야하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예전 대학로 我處帝國 시절에는 종종 라디오를 듣곤 했었다.
당시 대개 저녁부터 삶을 시작했던 내게 라디오는 유일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라디오를 듣으며 이소라 살인사건,이란 유치한 소설을 한 편 써놓기도 했는데
지금 읽어보면 꽤나 쪽팔리면서도 어쨌든 내게 있어서 즐거운 한 가지의 추억은 되었다.
그 시절에도 영화음악이나 제3세계 음악을 주로 들었던 것 같다.

지난 일요일 밤에는 TV에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최수종, 하희라 주연의 아주 촌스러운 옛날 영화를 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아직 퇴근하지 않으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누워 그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도 학창시절 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그 영원에 가까운 장구함이 마음에 든다.

요즘은 외출을 잘 하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내 지출의 대부분은 술값 혹은 택시비가 될 만큼 나는 외출해 있는 게 일상이었다.
술에 취해 몽롱한 정신으로 택시에 오르면 그 속에서는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힘겨운 하루를 정리하고 또 다시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현대인들을 치유라도 하고 싶었던지
심야의 라디오 진행자들은 언제나 편안한 목소리를 준비해 두었다.

새벽 5시가 되니 음악도, 진행자도 조금 경쾌해 진다.
나는 이제 자려고 하는데 진행자는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자고 이야기 한다.

나는 keqi를 떠올렸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별로 듣지 못했지만 keqi는 예전부터 워크맨을 갖고 다니며 항상 무언가 들었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
그것이 음악이었는지, 라디오 방송이었는지,
어쩌면 keqi답게 어학 테잎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내게 바지런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keqi는
마치 모 침대 광고의 주인공처럼 상쾌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것만 같다.

정신도, 육체도 밝고 건강한 청년이 연상된다.
아무리 끼워 맞춰봐도 나는 그런 인상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음지에 틀어밖혀 있으면서 게으르고, 반사회적이거나 비사회적이며, 어둡고, 음침한 게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나의 인상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우유에 씨리얼을 먹곤 함께 출근길을 나서는 현관 앞에서 살짝 입 맞추는 다정한 부부의 모습은 내게 결코 연상되지 않는 것 같다.
밝은 햇살이 내리 쬐는 일요일 오전, 근처 공원으로 가족과 산책 나와 즐겁게 웃는 모습은 내게 결코 연상되지 않는 것 같다.

2002년이 곧 가고 나면
나는 한국에서 사회적인 나이로 어느덧 27이 된다.
심각한 문제다.
만으로 따져도 20대 중반이 되어 버린다.

주먹만 꼭 쥔 에스키모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어쨌든 내 삶의 방향을 곧 결정해야 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해야만 한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乾坤一擲.
어린 시절부터 낚시를 많이 해온 나는 강태공을 떠올린다.

그저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017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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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thers2002-12-12 23:30:41
네놈에게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를 추천한다.
그 주인공이 꼭 너처럼 산다. -_-
그 아저씨가 제시한 해법이란 것도 책에 숨어있는 인상을 받았으니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뭐..읽을 시간이 있다면 말이지 -_-; 책읽는게 어디 쉬운일이어야 말이지. 쩝.

 Keqi2002-12-25 10:45:35
난 항상 수다스런 AM 라디오를 듣거나 최신가요 테이프를 듣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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