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리나 지혜 (2003-06-10)

작성자  
   achor ( Hit: 1902 Vote: 11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고등학생 시절 내 아버지는 내가 인문계생으로서 법대로 진학하길 바라셨다.
그리하여 고시를 준비하고, 그에 합격하여 내 삶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길 바라셨던 게다.

그러나 나는 경제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3X3 EYES을 즐겁게 본 까닭에 인도어학과, 또 수학을 좋아하던 탓에 통계학과를 꿈꾸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학과를 나와 기업에 입사하여 무역업에 종사하길 바랬던 게다.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로서 나의 그런 꿈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셨다.
삶을 회사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셨던 아버지로서는 당연한 일이셨겠지만
또 반면 당시 정주영이나 김우중, 심지어 이명박의 자서전 따위를 감명 깊게 읽고 있던 내게 있어서
한 회사 속에서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아주 놀랍고, 희망찬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생각이
자신이 과거 건강상의 이유로 실패했던 고시에 대한 열망을 자식 세대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욕심이라고 판단했었고,
만만찮은 고집을 지닌 나는 내 생각대로 경제학과에 진학을 했다.

아버지는 내 대학 합격 소식에도 그리 기쁜 표정을 짓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2.
얼마 전 가당치도 않게 고시를 본다는 둥, 만다는 둥 떠벌리던 기억이
갑자기 그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오버랩 되었다.

생각해 보니 참 오묘한 일이었다.

과거 고시 따위의 공부하는 걸 싫어한 대신 회사에 취직하는 걸 꿈으로 갖고 있던 내가
얼마 전에는 회사 취직 대신 고시를 꿈꾸지 않았던가.

이 완벽한 도치에 나는 새삼 시간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3.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들,
어떤 것에 대한 선호도나 보다 높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 그리고 꿈과 희망 따위의 것들이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는 무의미해지거나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게
조금은 겁이 나는 일이면서도 또 조금은 짜릿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효리나 지혜 같은 얘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여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녀들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아! 그렇군! --;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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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