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습 (200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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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674 Vote: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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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      개인

1.
별 것 아닌데, 겨우 이사 가는 것뿐인데
그래도 혼자의 힘으로 마련한 공간이라고 괜히 마지막 밤이라는 게 좀 아쉽게 느껴진다.
벌써 29시이건만.
내일 이사하려면 잠 좀 자둬야 하겠는데 피곤하면서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서의 지난 2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2년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나태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또한 동시에 가장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해 본다.



2.
저녁에는 회에 소주 한 잔 하고,
노래방에서 간만에 열창을 좀 했다.
이런 피땀어린 열창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를 아쉬움을 다 털어버리기라도 할 듯 나는 소리를 질러댔고,
그리곤 목이 좀 쉈다. --;



3.
이렇게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결국은 시간이 흐른다는 명제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간에 결국 남게 되는 결과는 시간이 흘렀다,뿐.
그렇게 시간을 소요해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삶을 지속시켜 나간다는 것.
결국은 종결을 맞이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
시간을 거스르는 것, 영원한 것은 결국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지속시켜 나간다는 것이
왜, 무엇 때문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 그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어떻게든 흘러갈 시간이고,
또한 어떻게든 가버릴 젊음인 것을.
단지 또 다른 삶이 존재하고 있을 거란 희망, 사실은 자기 만족일 수 있는 그 위안을 가지고 삶을 지속시켜 나간다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수록 맞닥들이게 되는 것은 무의미다.
근본적으로 종결을 안고 있는 영원치 못한 존재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것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 하다.



4.
그러나 역시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그런 아쉬움과 무의미도 결국은 시간 속에 흐트러질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제 몇 시간 후면
나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 삶을 시작해 나갈 것이다.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울기도 하며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미 시간은 나의 근심과 걱정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서
나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작해야 인간이라는 것. 어떻게든 자연의 섭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신이든 자연이든, 내가 아닌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는 것.



5.
마지막 모습이다.
더 이상 추억어린 이 모습은 없다.
내 젊음, 25, 26, 27살의 모습이 담겨 있는 이 공간은 이걸로 끝이다. 끝.

좀 더럽다. --;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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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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