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파멸되길 기대한다 (2004-01-06)

작성자  
   achor ( Hit: 1120 Vote: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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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홍정욱의 '7막7장'은 내 학창시절에 있어서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었다.
그 시절에 나는 그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에 감명을 받곤 했고,
또한 그의 모습 속에서 삶의 길을 찾으려 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기에 홍정욱의 그 이후 삶 역시 내겐 적잖은 관심사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삶에 대한 주관과 방향이 조금 더 커진 지금의 상황에서
그는 더이상 내 앞에서 대단하거나 멋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는 가식적이고, 가증스러우며,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이다.
그의 자를 잰 듯한 계산적인 냄새와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있어 보이는 저 기름끼는 심지어 역겨울 정도다.
마치 결벽증 환자처럼,
완벽하기 위해 필살의 노력을 경주하는 게 안스럽고 불쌍하다.

고등학생 시절에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중학생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학업이나 운동 실력을 두루 갖춰 그의 결벽증이 통용되고 용인되었으나
고등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자신의 능력 이상을 요구하는 결벽증에 결국 소년의 삶을 망쳐버릴 수밖에 없던,
그런 친구.
학업이나 운동 등으로 인간의 능력이 평가 받는 남자 고등학교에서
무엇 하나 변변찮게 하지 못하면서 자존심과 자만심을 지켜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깨달았었으리라.

나는 이제
홍정욱, 그의 과욕과 과신의 절망과 끝을 보고 싶다.
보라. 사회에 대한 완벽한 배신과 저 개인적 욕망의 거죽을.
너는 파멸되어야 할 사람 아니던가.

- achor WEbs. achor



‘7막7장’의 우상, 땅으로 내려오다
헤럴드미디어 대표 홍정욱
심규진 기자
케네디를 가슴속에 새기며 벤치마킹 해온 젊은이가 있다. 34세 청년 홍정욱.

그의 말대로라면 어린시절부터 그는 케네디의 발자취를 좇았다. 15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뒤 케네디의 모교인 초우트 고교와 하바드대에서 수학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누구인가. 대학 졸업 당시 ‘7막 7장’이라는 책을 펴내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방송과 신문들은 깜짝 놀랐다. 왕년의 명배우 남궁원의 아들,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 출신, 수려한 외모…. 언론이 열광할 수 있는 화제의 3박자를 갖추고 화려하게 한국에 첫인사를 한 그는 곧바로 명사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희망이 성공을 낳는다’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고, 세상의 어머니들에게는 조기 유학의 정당성을 부여해준 장본인이었다. 언론은 줄곧 그에게 ‘영국 왕자’의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의 환호에 부응했다.
그가 지난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7막7장’의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변호사 생활, 벤처 기업 운영, M&A 뱅커 등의 미국 이력을 덧붙인 그는 이번에는 최연소 언론사 대표를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비난과 의혹, 억측과 시샘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케네디가 언론재벌 허스트의 기자로 유럽을 누볐던 것처럼, 그의 행보가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미국 대신 한국을 택한 것을 두고는 “용의 꼬리가 되려하기 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려한다”는 비아냥에도 시달렸다.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그는 모든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모범 답변으로 일관해 왔다. 그는 왜 언론을 선택한 것일까?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그만의 비전은 무엇일까? 이번에도 “두고보십시오. 잘 하겠습니다”라는 답변만 듣지 않는다면 절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미국 유학 생활 동안에도 정착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미디어다음
한국으로 컴백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여론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씨처럼 글로벌한 인재가 되길 바라는 사람도 많았는데요.

미국에서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부유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살면서 한번도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변호사, M&A 뱅커, 벤처 기업 등 다양한 경험이 마무리됐던 시점입니다. 더 이상 미국에 있을 이유가 없었죠. 실물경제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거쳤기 때문에 한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재발간된 책의 내용이 너무 성공쪽에만 맞춰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리더가 아닌 월급쟁이로 살았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좌절과 깨달음은 어떤 것이었나요?

뱅커 생활은 일주일에 90시간 이상 일하는 강도 높은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숫자와 씨름하고 자료 정리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대적 인수 합병의 화려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죠. 3년 정도 M&A를 하던 차에 벤처 붐이 있었습니다. 최고의 인력이 모여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뒤도 안 보고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경영 모델이 다 이론적이었고 현실화 하는 데는 실패했죠. 다른 회사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경영은 달랐고, 인터넷 버블이 계속 갈 줄 알았는데 금방 꺼졌죠. 최고의 인재들이 최대의 투자를 받는다는 자신감에 편승했지만 실패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경영에 성공해본 적이 없어 신뢰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자서전 발간이나 언론사 인수 등을 두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 않으셨나요?

저는 미다스의 손이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할 뿐이죠. 너무 큰 옷을 입지 않았나하는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제 스스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나를 믿고 맡기려는 사람이 있었고 이때를 놓치면 후회할 꺼 같아서 시작했습니다. 분에 넘치는 큰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아니에요.

병역을 6개월만에 해결하신 것도 그렇고,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기득권에 대해 한국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유학을 간 것이 기득권이라면 할말은 없습니다. 책 발간으로 누린 유명세의 이윤도 인정하는 바이고요. 35세까지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지만, 영구 정착하기로 결정한 이상 영주권을 버렸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끝도 없지요. 군 복무라는 괴로운 문제가 운좋게 6개월로 끝났고요. 짧은 시간이라 가기로 결정했던 거고,

그럼 2년, 3년 복무를 해야 했다면 재고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입니까?

심각하게 생각했겠지만 결론은 군대에 갔을 것 같은데요.

꼼꼼하고 준비성과 책임감이 강한 본인의 성격을 고려하면 썩 바람직한 선택은 아닌거 같습니다.

35살까지 미국에 살면 면제가 된다는 조항이 있었죠. 그러나 저로선 꼭 그때 들어왔어야 했습니다.

신문의 정치 과잉 시장 경제가 치유해야
"헤럴드미디어의 색깔은 이념지향이 아니다." ⓒ미디어다음
경영자로서 굳이 언론사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론사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이념이나 신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회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언론사가 가지는 복합적인 영향력이 있죠. 그러나 정계 진출을 위한 포석은 아닙니다. 신문사도 지식 서비스업으로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에게는 매력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정치가로서의 꿈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바 있는 그의 비전을 엿보기 위한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이다. ‘언론사 경영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식의 기자 채용 구술시험이라면 백점을 맞고도 남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세련된 매너를 보여준 그의 언변은 매우 모범적이고 정갈하여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뒤집어 보면,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계산하는 듯한 그의 대화 방식은 ‘가식적이다’라는 오해를 살만도 했다..

최대한 자생적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언론은 돈 많은 사람이 영향력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대주고, 기자들이 본업 외에 광고를 요구하거나 촌지를 받거나 하는 잘못된 관행이 계속돼 왔습니다. 언론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깨져야 합니다. 이익을 내는 언론사는 살아남고 기자 월급도 못 주고, 부채 상환을 미루며 버티는 곳은 퇴출돼야 합니다. 신문이 국내에서 정치력을 확대하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군소 신문들을 인수 합병하고, 케이블 TV, 인터넷 매체로 진출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를 대표하는 미디어 그룹이 돼야 합니다.

회사 경영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춘 언론사? 수익을 내고 동북아로 진출하는 대표 언론사? 그의 비전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여전히 수익 이외의 그가 언론사를 해야만 하는 구체적인 목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언론이 시장에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언뜻 순리에 맞고 합리적인 것 같긴 하지만 우리 나라 언론 환경을 비춰보면 굉장히 걱정스러운 주장이기도 하다. 시장 구조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독과점 언론과 마이너로 대변되는 독립 언론들로 대치되고 있고, ‘시장 경제’는 보수 언론이 독과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제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그의 견해는 ‘언론은 공기다’는 개념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목적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미디어, 또 하나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탄생시키는 것일 뿐인가?

시장 경제가 보수의 논리로 쓰였던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야 말로 마이너 군소 특화 매체입니다. 우리 나라 신문의 정치 과잉도 결국 시장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의 색깔은 이념이 아닙니다. 대중화, 기업화, 국제화, 전문화이죠, 굳이 우리 나라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중도 보수라고 할 수 있겠죠.

경영자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그의 생각을 묻는 인터뷰는 인터뷰 시간의 절반을 넘어갈정도로 길어졌다. 그는 허심탄회하게 ‘안티조선’에 대한 생각부터 조중동에 대한 평가, 공중파 방송의 권력, 현 정부의 언론개혁까지 우리나라의 언론계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지만, 자신이 공적으로 그런 사안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며 ‘오프더 레코드’를 요청했다. 지극히 신중한 말을 아끼고 가리는 그의 모습은 청년답지 않은 ‘소심함’으로 비춰지기도 했지만, 많은 구설수에 시달렸던 그의 성장기를 비춰볼 때 그리고 수백명을 대표하는 리더의 역할을 고려했을 때는 불가피한, 필수적인 덕목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끝없는 의혹들, 그러나 나는 억울하다.
언론사 대표의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족벌경영, 언론의 사유화라는 비난의 화살이 그를 조준했다.
ⓒ미디어다음
헤럴드경제 제호변경, 대대적 구조조정 단행, 7막 7장 재발간과 회사 광고 출연 등 자사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CEO 마케팅’을 이용하고 개혁에 팔을 걷어부쳤던 지난 일년은 가장 왕성한 의욕을 보이며 열심히 살았던 한해였던 동시에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으며 호된 신고식을 치른 기간이기도 했다. 구조조정 기간 81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그 와중에 노조와의 관계도 극도로 경색됐다. 그가 족벌경영, 책 재발간 등으로 언론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이 미디어오늘과 KBS 미디어포커스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노조에서 지적한 비난의 요점은 그의 부친과 장인, 누나가 이사직 등 요직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또 오랜기간 회사에서 일해온 간부들이 배제되고 외부에서 온 자신의 측근들로 요직을 채웠다는 것도 비난의 한 축이다. 차분한 매너로 마치 대학 면접 시험을 보듯 신중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족벌경영’이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와 제스쳐가 커졌다. 엄연히 인사권을 가진 회사의 경영인으로서, 당장 수익을 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은 입장에서 자신의 ‘합법적 권리에 대한 태클’을 그는 참지 못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단적으로 상황에 안 맞는 얘기입니다. 아버지와 장인은 경영에 일체 관여 하지 않습니다. 직함만 이사이고 고문이지, 급여도 없고 비서도 없습니다. 제 은행 역할, 소방수 역할, 한마디로 ‘119’입니다. 제 누이도 상징적으로 가족이 사장을 맡아야 한다고 해서, 그래야 투자 유치가 조금이라도 쉽다고 해서, 억지로 떠밀려서 간 겁니다. 그런 것을 족벌 경영이라고 끌어가는 것 자체가 이슈로 부딪치지 않고, 소모적 흠집내기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 걸 좋다고 받아쓰는 인터넷 매체와 방송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모든 정치가나 경영자가 그러하듯 저 또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하기 위해 제 편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그 일로 얻은 수확은 있습니다. 이제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그야말로 경영에만 신경 쓸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KBS가 아니라 KBS 할아버지가 와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요즘 방송과 신문의 전쟁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신문의 입장에서 방송의 타깃이 되신 거라는 말씀이군요.

사실 회사를 정상화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니, 조중동이 KBS와 싸우든 말든 관심사가 아닙니다.(웃음) 그러나 당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공영방송이 좀 중심축을 잡아줘야 한다고 보는데 노조의 입장만 부각시켜 저 개인을 공격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책 재발간 때문에도 말이 많았습니다. 본인의 의사였나요?

(이런 해명이 혹여 자신의 잘난 척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면서도 그는 당당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갔다.) 절판한 책을 재발간 한 것은 정치인이 정치 안한다고 하고 다시 하는 거와 다름없이 거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재 창간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연재 약속을 했고 우리 회사 기자들이 부수 창출을 위해 제시한 아이디어입니다. 기본 상식을 갖고 있다면 발행인의 글을 회사 지면에 싣는다는 것은 무모하고 욕먹을 것이 뻔한데 그러나 젊은 층을 공략하고 화제를 모으는데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었죠. 비난이 있을 때 끌어 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기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냥 있었습니다. 제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책을 낸다 안 낸다 우스워지는 상황논리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홍사장이 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 타 언론사와 차별화되는 전략은 무엇이냐에 대한 의구심도 큰데요.

지금도 어느 곳보다 더 투자했다고 자부합니다. 연봉제 임금 격차를 해소했고 사내 컴퓨터 시스템과 기자들 노트북도 최신형으로 교체해주었고요. 투자자는 경영이 정상화되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귀족 이미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남다른 근성과 성실함 그리고 헌신적인 부모의 뒷받침, 지금의 그를 만든 요소가 아닐까? ⓒ미디어다음
홍정욱의 인터뷰 기사에 빠지지 않는 대목은 그의 외모에 대한 찬양이다. 최고 학벌, 유복한 집안 환경, 명문가 출신의 아내, 올곧은 성품과 수려한 외모까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귀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그는 단지 유명 배우의 아들일 뿐이다. 가기업의 종손도 아니고 번드르한 명문가의 자제도 아닌. 물론 우유 나르고 신문 배달하면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유학을 갈 수 있었던 환경은 축복임에 분명하지만, 자신을 ‘귀족’으로 보는 세상의 시샘과 편견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단다.

사람들이 연예인은 보통 사람으로 보면서도 저희 아버지만은 유독 부자로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귀족은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가 열심히 분 발라 번 돈으로 유학 보내셨습니다. 회사 인수도 저와 아버지의 돈 그리고 대출받은 자금으로 했고요. 처가집만해도 장인이 장관을 지내셨지만 오랜 기간 월급쟁이 생활을 하셨던 분이고 이모부가 재벌(정몽준 의원)이라고 해도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변에 재벌이나 명문가가 있는 사람이면 더 잘 알 꺼에요. 그런 사람들이 더 개인적이고 절대 친인척에게 돈을 주거나 불필요한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물론 오해와 편견일 수 있지만 본인이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고 보는데요.

물론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습니다. 인정해요. 지 잘났다는 책 쓰고 떠들고 다녔으니까요.(웃음)

책의 문구가 도발적이라는 느낌입니다. 33세의 나이에 “이제 검증의 삶이 시작됐다”고 하니까, 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서는 “건방진 것 아니냐”는 거부감이 있는 것 같은데
(건방지다, 거만하다는 투의 공격적 질문에는 정말 답답하다는 듯 정색을 한다. 겸손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조건적인 반대와 비판은 참을 수 없다는 분명한 선을 긋는 듯 하다)
거부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제 관점에서는 이상합니다. 내가 나와서 검증을 받겠다는 게 아니고, 사주로서 회사를 맡은 이상, 경험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아버님이 연예인, 영화인인데 영화인 2세를 생각해보지는 않았나요?

아버지가 철저히 그런 환경에서 저를 보호하셨던 측면이 있습니다. 집안에 한번도 연예인이 초대된 적이 없고, 자식을 세트에 데려간다거나 공연장에 간 적도 없으셨죠. 지금은 대중문화인이 오피니언 리더지만, 그때는 사회적 인식도 요즘 같지 않았던 시절이고, 아버지께서 학구열이 높으셨던 분이에요. 배우의 길을 당신 스스로 선택했던 것보다는 끌려 들어간 측면이 있어선지, 사실 아버지가 배우라는 것을 크게 인지해 본 적도 없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대통령의 꿈을 아들들이 실현시켜 주길 바랬던 케네디의 부친처럼 오늘의 홍정욱을 만든 것은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뒷받침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타고난 ‘귀족’은 아니지만 ‘노블리스’를 얻고자 하는 본인의 성실함과 근성도 그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모범생 타입의 이 남자는 현재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는 듯했다. 가진 것이 많은 자는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고 했던가? 그에게서 패기있고 진취적인 정치인 케네디의 모습이 겹쳐졌지만, 현재의 그는 열정과 자신감을 당분간 숨기기로 작정한 듯 했다.

2시간의 인터뷰가 끝난 뒤 헤럴드미디어의 언론 담당자는 인터뷰 도중에도 4개의 방송,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일은 쉽지만 그의 말대로 ‘검증’하는 일은 어렵다. 34세의 언론사 대표에게 놓여진 수익 창출의 과제와 ‘정도 언론’으로서의 발걸음은 19년 전 15세 동양인 소년이 화장실에서 벌였던 영어와의 사투보다 훨씬 더 힘겹고 고난한 도전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만약 그의 신념과 집요한 열정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면 어떤 그림이 될 것인가?

보다 분명한 것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요구되는 언론사 사주로서 그가 펼칠 미래와 그에 대한 평가는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을 넘는, 보다 더 높은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본문 내용은 7,62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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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욱: 홍정욱 (2002-12-04 20:47:55)- 홍정욱: 스물 셋의 겨울 (2000-12-09 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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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