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시절 얘깁니다.
하지만 배경이 군대일 뿐이니 부담없이 읽어 주셔요.
저는 통신병이었는데 부대막사 근처언덕배기에 통신 수신소가 생길예정이라며
인사계(중대살림을 꾸리는 사람. 계급은 상사. 일반적으로 단순, 포악함)님이
절더러 수신소를 관리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수신소를 관리하는김에' 닭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언제 닭을 키워본 경험이 있었겠습니까.
닭이라곤 통닭집에 다리벌리고 엎드려 있는거 아님 시골에 병아리를 거느리고
총총이 걸어 다니는거 본거말곤 가까이 해본적이 없는 저에게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군댄데...
산짐승으로 부터 닭을 지키라는 것이었는데 120마리 중 80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40마리만 겨우 살리는동안 산짐승 구경도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1차로 80마리의 병아리가 제게 주어졌고 저는 이놈들과 함께
악몽의 5개월을 시작한것이지요.
군대에 무슨 마른곡식이 있겠습니까.
군바리나 닭대가리나 모두다 짬밥을 먹죠.
군대반찬...육군본부에서 이상적으로 구성한 식단에 의한 식사아닙니까.
거기엔 온갖가지 음식이 다 나오죠.
...국수도 있지요.
국수를 보면 이것들이 미친듯이 달려듭니다.
아마도 벌레인줄 알고 그러는거 같습니다.
허허허 닭이 국수를 쪽 빨아먹을까요.톡톡 쪼아 먹을까요.
그렇습니다....닭은 국수를 쪼로록 빨아 먹는답니다.
몰랐죠?
또 식단엔 아시다시피 계란도 있고 닭고기도 있습니다.
이거..다 먹더군요.
첨엔 잔인한 일 같아 이걸 줘도 될까 망설였지요.
하지만 첨 먹여본 순간 이것들 정말 닭대가리군 싶었습니다.
미친듯이 잘 먹었습니다.
바다에 사는 칼치가 먹을것이 없으면 서로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이건 제법 고등동물인 조류도 다를바 없더군여.
한번은 고참이 뱀을 잡았는데 내장을 꺼내니 위장안에 새끼쥐 하나가
반쯤 소화된채로 들어있더군여.
우우욱... 고참이 굳이 위장을 갈라 보여주더군여...촌놈...
그리곤 닭한테 갖다 주라길래 내키진 않지만 던져줬더니 무슨 별미라도 만난듯
그걸 물고 도망치고 쫓아가서 뺏고 또 다른놈이 덮쳐서 낚아채고 난리도 아니더군여.
결국 젤 힘센놈이 먹긴 했지만
오...심지어는...
이건 정말 마치 공포영화의 한장면 같은건데..
120마리중에 80마리가 죽은건 모두 병때문이었습니다.
닭이 병에 걸리면 눈이 탱탱부어서 지 머리통만해집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대가리의 측면 3분지 1정도에 지대가리만한 혹이 달리고
그 혹위에 눈알이 붙어있는거죠.
우...근데 옆에 놈이....그 눈알을 파먹는거 아닙니까...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파먹히는 놈은 아프지도 않은지 가만히 서서 피만 뚝뚝흘리고 있습니다.
밥을 그렇게 쳐먹고도 뭐 먹을게 없어서 옆에놈 눈깔을 파먹는지...별미인가 봅니다.
그래도 좋다고 푹파인 눈깔로 돌아다니는 놈도 어차피 닭대가리니깐요.
정말 괜히 닭대가리가 아니랍니다.
앞으론 닭고기 못먹을꺼 같죠?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 더한 경험을 하고도 (차차 얘길하겠지만) 여전히 닭고기를 좋아한답니다.
어느날 부턴가 닭들이 하나둘씩 날개가 쳐지기 시작하더군요.
닭이 병이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증세가 바로 날개가 쳐지는 것이지요.
일단 날개가 쳐졌다하면 이건 하루 아니면 이틀만에 죽게되어 있지요.
와장창 한꺼번에 죽은게 아니고 하루에 한두마리씩 죽은걸 봐선 아마도 전염병은
아니고, 통풍안되는 닭장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통신보안을 위해서 소리하나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되어있는 통신 박스안에서
그 습기에..그 냄새에...닭들이 병에 안걸리면 이상한 거였죠.
어쨋거나 힘이 없는 제가 어쩔방법은 없었죠.
그냥 죽는걸 지켜보는수 밖엔. 죽어도 낮엔 절대 안죽습니다.
꼭 밤에 닭장안에서 죽죠.
...그 모습은
...굳이 설명하자면 밤새 죽은 시체를 옆에놈들이 하도 밟아서 납작합니다.
그것도 그냥 납작한게 아니고 닭똥이랑 범벅이 되어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죠.
그걸 삽으로 긁어내고 있노라면 등에 소름이 쫙 끼칩니다.
(하긴 열마리째 까지는 그랬죠.. 그 담부턴 늘 언제나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고참이 그러더군요.
죽은 닭은 파묻지 말고 자기에게 갖고 오면 요리해준다고... 미친넘...
니가 그 꼴을 못봐서 하는 소리지..
생각하며 삽으로 긁어다 줬더니 절 죽이려고 하더군여.
한번은 인사계가 올라와서 닭은 둘러보는데..(아까 설명했다시피 '인사계'라는 종류의
인간은 대체적으로 다 단순, 포악함...) 그날도 아니나 다를까 날개가 축 쳐진 놈이
하나 있었습니다.
인사계의 지론에 의하면 닭이 자꾸 헤롱거리는 것은 짬밥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마른 곡식을 먹여야 하는데 밥을 먹이니깐 콧구멍이 막히는거 라나요.
일리가 있는 얘깁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한놈씩 잡아서 콧구멍을 파줬죠..
우끼지 않습니까..
고향의 부모님들께선 막내아들이 군대에서 씩씩한 국군장병으로서 국토방위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줄 아실텐데 정작 전 병아리 콧구멍이나 파고 있었으니...
헌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며칠후..인사계가 다시 올라오더니 여전히 빌빌거리는 병아리 몇마리를 봤죠.
(물론 그 며칠동안 몇마리는 죽어 나갔구여..)
우... 인사계의 두번째 지론..
콧구멍이 아니었다. 똥구멍 이어따!!!
밥을 먹여서 똥구멍이 막힌거다. 원래 닭은 똥구멍으로도 숨쉰다.
똥구멍을 뚫어랏!!!
똥구멍은 바늘로 쑤실수 없죠..
우..욱.. 입으로 불어서 뚫어라고 했습니다.
먼저 시범을 보이며 상세히 지도해 주더군여.
양손으로 병아리 대퇴부가 나으 입쪽으로 오게한뒤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똥구멍을
살포시 별려서 순간적인 입바람으로 짧고 세게 "훅!"해라고...
자신이 먼저 한번 하더군여..
"훅!"하곤 휙 던지니 병아리가 미친듯이 닭장을 뛰어다니더군요...
"저거 바바..살았자나!!!"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지 똥구멍에 예상치 않은 찬바람이 불현듯 몰아쳤는데 병아리 아니라 사람이라고
한들 안 놀래겠습니까?
당연히 미친듯 주위를 뛰어다닐거 아닙니까..
그러나 인사계는 똥구멍이 뻥뚫려서 드뎌 숨을쉬게 되었고 그래서 좋아서 저렇게
뛰어다니는 거라고 생각하더군여...
물론 인사계가 내려간뒤 그 놈은 빌빌대고 있었고 담날 죽었지요..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전 인사계가 떳다 싶으면 병아리 똥구멍을
나의 입술 전방 1cm까지 갖다대야 했고 (이런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전 죽습니다.)
힘차게 한번 불어서 던진후, 놀라서 뛰어다니는 병아리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
인사계를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그 발씸거리는 병아리의 똥구멍이란....
제대한지 어언 5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너무나 눈에 선합니다.
저, 하지만 여전히 닭고기 잘먹습니다.
그러나 똥구멍 부위는 절대 안먹습니다. 못먹습니다.
어쨋거나 아침마다 전 닭장안의 납작쿵이 된 똥범벅 시체들을 한두마리씩 긁어내야
했고 삽에 묻은 똥을 다 털어내기 전에 또 날개가 쳐진넘을 한두마리 확인을 하고
있었죠.
특히 날씨가 흐린날은 더 잘 죽지요.
아마도 습기가 심해서 인가 봅니다.
비오는날 병아리를 파묻어 보신적 있으십니까..(물론 없겠지여...허허)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장면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자그마한 구덩이를 파서 삽으로 병아리를 떠넣고 흙을
덮을때의 그 기분이란..
더 심할때가 있습니다...허헉
병아리 묻을려고 땅을 팠는데 전에 묻었던 놈이 머리를 내밀때....
우.. 조용한 가족 하고 똑같습니다.
비에 흙이 씻겨 내려가면 먼저 묻었던 넘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거든요...
상상하지 마세요. 그 이상입니다.
더욱 더 심한경우..
인사계가 날개쳐진 놈들을 보다 못해 닭장 울타리로 몸소 뛰어들더니 군화발로
툭툭건드리다가...
발로 뻥 차버리더군요.
그러면서 내뱉는 소리..
"개새끼!!!"
허허허...닭새끼 보고 개새끼라니...
데굴데굴 몇바퀴 구른 병아리는 쫙 뻗었고 냉혹한 인사계는 묻으라고 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하지만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안 죽었는데요.."하겠습니까..
땅을 팠습니다.
그리곤 덜 죽은 그놈을 구덩이에 넣었지요..
절 바라보던 병아리의 그 눈동자...
그러나 눈물을 머금고 전 흙을 덮을수 밖에 없었고..
흙을 다지느라 발로 밟았더니...
"삑삑..."
전 죽어서 지옥갈겁니다...
신해철이의 '날아라 병아리'이거 슬픈노래 축에도 못낍니다.
제가 음악적인 능력만 있었어도 이거보다 백배 슬픈노래 수백곡은 만들었을 겁니다.
'살아라 병아리' 뭐 이런거요...
어쨋거나 그 뒤 추가로 40마리의 신참 병아리들이 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전입을
해왔고 그들의 운명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튼튼하고 잘 크는 놈은 끝까지 잘 큽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모습으로 멋진 수탉이 된놈도 있었고 (그놈이 눈깔 파먹고 뱀
위장과 함께 쥐새끼까지 다 먹은 놈입니다.)살진 암탉이 되어 달걀을 낳은 니언도
있습니다.
첨 낳은 달걀은 아주 작더군요.
제가 먹었냐구요..
똥에 범벅된 달걀을 제가 먹었겠습니까..
힘센놈은 끝까지 살아서 멋진 모습으로 자랐지만 그래봤자 뭐하겠습니까..
그들은 어차피 음식이거늘...
살아남은 40마리중 20마리는 장교들의 한때 회식에 모두 희생되었고
나머지 20마리는 우리 중대 한때 회식에 모두 희생되었지요.
회식때 제가 닭을 먹었냐구요?
먹긴 먹었습니다.
맛은 있더군요..근데 신기하게도...
찜통속의 닭을 보고 있자니...이 닭은 어느 놈이란걸 어렴풋이 거의 알겠더라구요..
20마리의 몸집이 다 같지 않았거든요.
잘 자란놈과 못 자란놈의 몸집크기가 각각 다르다보니 대충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닭이란게 개나 소와는 달라서 정이 안가다 보니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양계는 끝이 났죠.
얼마나 후련하던지..
5개월동안 닭키우면서의 이야기가 재밌는 경험이라고 해야되나,
악몽같은 경험이라고 해야되나 갈등도 됩니다만
어쨌거나 의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양계하시는분들께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죽어도 양계는 못할꺼 같습니다.
그리고 조류가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