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잠들어 오후 네 시경 일어나 맞이한 어린이날의 풍경은
아주 어둡게 기록되고 있다.
실내등을 다 꺼둬서 그런지 어둑어둑 하고, 우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지난 겨울, 한 번도 걸리지 않던 감기가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내게 엉겨붙어 있어
연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낸다.
내 감기증상은 다른 것보다도 미각을 앗아가버려
나는 밥을 먹어도, 담배를 펴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맛을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뭐든 배만 채우면 그만인 세상,
골치 아플 때면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도 괜찮은 세상,
뭐 그런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는 내가 감기 걸렸다는 소식을 듣곤 쌍화탕 한 박스와
양약, 한약을 고르 섞은 감기약을 보내주셨다.
몇 알을 먹어야하는지 몰라 대충 양약, 한약 두 알씩
렌지에 데워 먹곤 담배맛을 음미해 본다.
기분탓인지 담배맛이 다시 나기 시작하는 것도 같다.
좋아하는 여름이 오고 있고,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능력이 안 따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
나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애인을 갈망하는 한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나는
애인 없이 사는 게 무슨 문제냐고,
뭐 그리 애인을 갈망하냐고,
그 친구를 이해 못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여유가 생기면 잡념이 많아지는 법이다.
빠듯한 일상에 쫓기고 있다면 내내 일상이 테마가 되지만
여분의 시간이 주어지면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게 된다.
여전히 게으르게 행동하다 보니 경찰청에 가지 못했다.
사랑이 없는 마음은
지금 이 어둑어둑한 어린이날의 풍경과 비슷할 거란 생각을 한다.
문제가 될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 조급해 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전위, 개성을 좋아하는 20대 초반을 지나
이제는 평범하고, 두드러지지 않는 학창시절의 뒷자리 학생을 꿈꾸는 나는
틀림없이 엽기가 인기를 얻는 이 사회가 싫지만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 또한 참기 힘들다.
어느새 5월이다.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은 2001년이,
불과 얼마 전에 광화문, 거리에서 열광했던 새천년이
이미 흐른 지 한참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일본풍 소설을 읽고 싶다.
그러나 나는 오늘 새벽,
평소 읽어둬야만 했을 컴퓨터 관련 서적 한 권을 다 읽어냈다.
그게 내 현실이고,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둑어둑한 2001년의 어린이날이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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