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qi]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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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qi ( Vote: 463 )

영화 카사블랑카에 대한 내용을 찾다가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클릭해서 읽어보시라.(누르면 새 창 뜨는 거 이젠 다 아시겠지만.)

카사블랑카의 시대적 배경이 비시(Vichy)정권이라니.

2차대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가공할만한 레오파트 탱크에 맞서기 위해 국경 부근에 탱크공격을 막기 위한 엄청난 참호를 깔아놓았다. 우리도 흔히 잘 알고 있는 마지노선, 바로 그것. (마지노는 그걸 고안한 사람 이름이고.) 그러나 독일은 아는 대로 프랑스 국경이 아니라 폴란드, 벨기에 등을 접수하고 며칠만에 그 쪽 국경을 통해 넘어와 프랑스를 공격했다. (나중에 이 개념은 세계 전쟁사에서 속도전의 예로서 기록된다) 전력의 대부분이 독일과의 국경선에 집중되었던 프랑스는 삽시간에 궤멸상태에 들어갔고 마지노선 역시 한 번도 전투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전쟁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파리를 비롯한 북프랑스의 주요 도시가 함락되고, 전 영토의 2/3 정도가 독일군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서 프랑스는 4공화국이 무너지고 1차대전 당시 베르덩 전투의 영웅이었던 페탱(Henry Petain)이 내각수반으로써 독일과의 강화 후 남 프랑스의 비시(Vichy)에 세운 정부가 바로 비시 정권이다.

프랑스는 패전의 굴욕감 속에서 영토 모두가 독일에 의해 점령되는 것만은 어떤 식으로든 막고자 했고, 그러한 의지는 비시 정권에 대한 의회와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독일에 대한 협력, 히틀러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많은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다른 의미에서의 굴욕감이기도 했다.

'관용이냐 정의냐' 佛 역사의 심판(누르면 역시 새 창)

비시 정권은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로 상징되는 개인적 가치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더 친숙한 집단적 가치를 중시했다. 프랑스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던 비시정권이었기에 독일과의 굴욕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재건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시킬 수 있었고, 레지스탕스의 경우에도 "의는 가상할지 모르나 프랑스의 발전을 위해 없어져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프랑스처럼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국가에서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란 히틀러와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대혁명 이후의 이른바 '현대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정신은 "쭈욱~ 계속되어야 하"므로, 그것을 부정한 이상 비시 정권은 프랑스이되 프랑스일 수 없었다. 특히, 독일과의 결사항전을 택한 자유 프랑스의 샤를 드골로서는 비시정권의 역할을 인정하는 순간 그와 망명정부로서의 자유 프랑스의 존재의 이유가 상실된다. 그랬기에 더더욱 그는 비시정부에 대해 단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프랑스 국민들 스스로가 4년 여의 비시 정권을 필요악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이상의 역할, 즉 프랑스 국민들을 핍박하고 히틀러를 도와 총후봉사했던 그 것에까지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비시 정권이 훗날 드골의 5공화국에서 처벌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의식, 프랑스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르노자동차의 회장까지도 차가운 감옥에서 옥사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의식은 왜 유럽을 역사적으로 강대국으로 만들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2차대전 전범 심판은 프랑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에서 모두 행해졌다.

그런데 인용문에서도 보았겠지만, 미국 정부는 전범재판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도 그는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미국인들의 독특한 성격과 정치적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북미 유일의 전면전이었던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은 남부인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완전한 사면령을 내린다. 전범으로 단죄하고 재판을 하는 것은 소수의 군인과 정치가들로 국한하고, 일반 국민에 대해서는 생업에 종사하면서 경제력을 유지케 하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남부의 면화와 엄청난 농업력을 고스란히 북부의 "연방정부"에서 흡수하고자 하는 이유였다. 물론 링컨은 얼마 뒤에 극장에서 연극을 즐기다 말고 안녕히 암살되셨지만, 역사가 짧은 미국에 있어서 그런 전범재판은 솔직히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이었다.
더구나, 그들처럼 항상 낙관적이고 음울한 걸 싫어하는 이들이, 그냥 easy-going하기만을 좋아하는 이들이 전범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옛날 죄를 묻고 난리 부르쓰를 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그들에게 있어서는 독일, 히틀러, 일본, 도조 히데키 정도의 전범을 빼고 나머지는 너무나 복잡하고 정치적이며, 그것을 잘못 건드려서 자신들의 군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김민웅 박사의 신동아 기고문(클릭하면 새 창 뜨심)

어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개정안"을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었다. 오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는 그와 관련한 몇몇 의원들의 어록을 소개한 바 있다.

"태아에게 성형수술하자고 칼을 들고 달겨드는 격이다" (김기춘, 한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틀을 깨는 법이다" (이인기, 한나라)
"아예 솔직하게 상정도 원하지 않는다고 해라" (강창일, 열린우리)

연희노인정으로 대표되는, 그 말 많고 탈 많은 정권은, 프랑스 5공화국의 초 대통령 중심적 헌법에 뢰벤슈타인의 신대통령제까지 가미한 유신헌법과 우리 5공헌법을 만들어놓고, 보안법과 반공법으로 무수한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왔다. 배울려면 똑바로 다 배워야지, 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쏘옥~ 빼놓고 사람들 핍박하는 것만 배우려고 하는가?
프랑스가 비시 정권을 단죄했을 때, 프랑스는 국토 전체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고, 남 프랑스 비시 정권 하에서 운영되던 공장도 미국의 맹폭으로 상당수가 가동중단된 상태였다. 경제를 생각한다면 르노 회장을 잡아넣을 이유가 없었겠지만, 그들에게는 프랑스의 자존심과 역사가 있었다.

역사에 대해서 솔직하고 겸허하게 반성하면 국민들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늦었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고, 국민들과 조상님들께 용서를 빌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이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특히 박근혜 대표의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10.26 이후 부친이 만든 공화당 적산이며 온갖 것들을 "부정축재"로 몰아 몰수해 민정당 재산으로 만들고, 부친의 사람들을 "부정축재자"로 정계에서 몰아낸 사람들과 손을 잡은 셈이다. 그야말로 역사에 대해 단호하고자 한다면, 그 때 박정희 정권에 대해 사실상 "구시대적"이라고 문화혁명 식으로 지워버리려 했던 사람들에 대해 분명히 단죄하고 넘어가야 마땅하고 옳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박 대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부친에 대한 이야기에 그렇게 흥분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가?

카사블랑카에서 사람들은 떠나려 했지만 표가 없어 Cafe Americain(까페 아메리깽)에서 어슬렁거린다. 왜 그들이 카사블랑카를 떠나야 했는지, 왜 그들이 영국이나 미국으로 가야 했는지는 역사가 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코미디같은 일은, 그 때 까페 아메리껭에서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해 기다리던 우리의 주인공을 더욱 그립게 한다. 정말 저런 정도의 무뇌충적 정상모리배들이 다스리는 한국에서 떠나고 싶다.

본문 내용은 7,487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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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의 압박으로 오늘에야 다 읽었소이다.
저번 금요일 신강균의 [사실은]에 원로들의 시국 선언 집회에 대해 다루더이다.
그러면서 얘기하길, 과연 원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더이다.

과연 그러한 것이 다음의 기사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겠소이다.

보수여 다 죽었는가 -한겨레-


저렇게 무서운 사람들 1500명이 순식간에 모여서 나라를 휘두루고 다닌다는 것이 가능하다니. 이 몸은 참으로 무섭소이다.

열 명 남짓 모인 양심 원로들의 초라한 국보법 반대 모임을 보고, 이 나라가 이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탄스러웠소. 만에 하나라도 5천만 민중의 뜻이 아닌 소수 깡패 무리들의 뜻대로 사태가 흘러간다면, 돈 없고 무식한 이 몸은 뱅기 표 살돈도 없이 태어난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아야 하겠수다. 퇴행적 역사를 반복하는 무식한 깡패들의 국가는 더 이상 내 국가가 아니기에.



 2004-09-19 12: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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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웬일로 연통을 다 주시었소?
수업중이라 받지 못하였소. 그리곤 까먹었지 뭐요.
게다가 워낙 전화 통화를 싫어해서.
혹 곡차 얘기라면 홈에 글을 남겨주오.

아는 거 졸라 없지만 이러한 시국에 꼭 만나야 할 사람 중에 하나가 객 선생 같은 사람이올시다.

 2004-09-19 12: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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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2/27/2025 10: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