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2007-10-15)

작성자  
   achor ( Vote: 35 )
분류      개인

https://youtu.be/BlHv3BbBv6A



1.
이미 10대 보이밴드나 걸밴드에 대한 흥미를 거의 완전하다시피 잃어버린 나임에도
원더걸스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요즘 세상은 '중독성이 강하다'라는 미명하에
온통 원더걸스의 Tell Me 열풍이며,
2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이라면
의례 하루 일과를 Tell Me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시작한다는 말이 일상화된 상태였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Tell Me 음악 자체보다 그 중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기에 이 정도의 열풍일까, 궁금증을 갖고
요 며칠 연신 Tell Me를 듣고, 봐 왔다.



2.
이미 내가 나이를 먹어버려 젊음의 트렌드와 거리가 멀어진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Tell Me에서 그 어떤 중독성도, 그 어떤 흥미도 느낄 수 없었다.

10대 걸밴드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는 했으나
그렇다고 무지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젊음의 한 가운데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않은 상황이라
세상과의 교류를 위해 나는 그간 카라나 소녀시대 등 신규 걸밴드가 나오면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음악이나 뮤직비디오 한 번쯤 듣고, 봐두는 정도의 성의는 나름대로 보여왔던 터다.

예쁜 걸로 따지자면 소녀시대가 나았고,
듣기 좋은 쪽으로 따지자면 카라가 나았다.
원더걸스는 내게 어떤 의미로도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3.
원더걸스에 대한 내 무반응이 처음에는 나 스스로를 의심케 했다.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과는 종종 차이가 있기도 하니 나는 다른 공연 동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중독성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관해 인터넷을 뒤져가며 조사하는 작업도 병행해 나갔다.

그 결과 샘플링한 곡 자체도 호평을 받고 있긴 했지만
핵심은 바로 '댄스'였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결론인즉슨 그리 섹시하게 생기지 않은 것들, 오히려 귀엽게 생긴 애들이
섹시한 춤을 추는 그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섹시한 춤이라는 게 그간 비비나 수, 초창기의 LPG 등이 했던 것처럼
좀 더 높은 연령의 타겟을 잡고, 적나라하게 우리는 섹시를 지향하는 가수다,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살짝 섹시한 그것,
결국 중독성의 모체는 보일 듯 말 듯한 귀여운 섹시함이었던 게다.

다시 보니 춤도 화려한 면이 있고, 얼핏 섹시하기도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도 내게 있어서는
여전히 그냥 그렇더라.



4.
원더걸스는 내게 있어서 다소간의 충격이 됐다.

나는 물론 패션, 문화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오히려 일종의 방관자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로 무지한 편이었지만
내가 좋은 것이 이 세대가 좋아하는 것이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근 시일내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적당한 직접경험과 간접경험 속에서
이 시대의 문화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학습'의 발로였으며, 자신감이었던 게다.

일례로 세상이 온통 스키니 열풍일 때
나는 스키니는 촌스럽고, 구리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그 열풍이 거의 지나간 현 시대에 와서는
아무리 입는 여성들이 편해도 남성들이 스키니를 싫어한다는 것은 통설이 됐다.

내가 SES를 좋아할 때 세상도 SES를 좋아했었고,
내가 핑클을 좋아할 때 세상도 핑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2007년, 세상이 원더걸스를 좋아하고 있을 때 나는 원더걸스를 좋아하고 있지 않고,
결정적으로 이내 곧 세상이 원더걸스를 버릴 것이란 확신 또한 갖고 있지 못하다.

원더걸스는 나와 세상이 결국 거리를 벌린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해서
왠지 내겐 슬픔으로 느껴져 온다.
나는 아무리 애를 쓰고 중독되려 해도
그 '테테테테테텔미'에 결코 중독당하지 못하겠다. -__-;

- achor


본문 내용은 6,24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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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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