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200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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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3843 Vote: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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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하루가 참 길기만 합니다.
요즘은 다시 게임이나 음악도 관심이 없어져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어제 받은 디카로 사진이나 찍어볼 계획을 하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파를 선택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외출하여 파와 양초, 그리고 110V를 220V로 바꿔주는 장치를 사왔는데 그 중 찍을 만한 건 파밖에 없더군요.

1000원 어치인데 엄청 큽니다. 파가 이렇게 쌀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과거에는 대개 마그넷에서 소량 포장된 걸 구매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동네 슈퍼에서 파를 사봤거든요.
한 단이라고 하던데 매일 배부르게 파만 먹는다고 하여도 두 달은 넉넉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파는 제게 가장 유용한 채소입니다.
한 번 쓱 닦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곤 라면을 먹을 때나 오뎅국 먹을 때 살짝 넣어둬도, 또 그냥 고추장에 찍어먹어도 맛있습니다.
물론 지금 제 냉동실에 들어있는 당근이나 양파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것들은 파와는 달리 쉽게 썰리지 않더군요.
단단하게 언 당근이나 양파를 써는 건 귀찮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단단하게 언 파는 가위로 그냥 잘라주면 되기에 차이가 있지요.

파를 사오며 제 삶을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아직 학생이라는 공식적인 신분이 있기에 제 백수의 삶이 그나마 매력적이지만 이제 졸업을 하고 나면 진실로 백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 정신을 바싹 차리게 해주지요.

아직은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어느 날은 소설이 써보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음악이 해보고 싶고, 또 어느 날은 오늘처럼 사진을 찍어보고 싶기도 한데, 아직 아무 것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평생을 살아갈 삶의 業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건 너무 억울한 일 같습니다.

Carpe Diem.
학창시절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말입니다.
오늘을 잡아라! 현재에 충실하라! 삶을 즐겨라!
어제부터 내내 생각하고 있습니다.
삶의 목표가 성공이나 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로 인생을 즐기고, 만족스런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
황혼의 바닷가, 어부를 생각하자.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되더라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악착 같이 살기 보다는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파의 이야기.
한 떨기 고목과도 같이 고고하게 퍼져있는 파를 보며 생각합니다. --;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726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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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4/20/2026 21: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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