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2002-07-01)

Writer  
   achor ( Hit: 1179 Vote: 13 )
Homepage      http://empire.achor.net
BID      개인

비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종류는 분명 아니었음에도
무엇이 지난 날의 나를 그토록 열광시켰었는지 오랜만에 보며 찾고 싶었다.
그리곤
비트는 영화다운 소재를 가지고, 영화 자체든, 스토리든, 인물이든 뭐든 적당히 멋을 냈기에
김성수 감독의 후속작 태양은 없다,보다 몇 십 배는 더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냈던 건 아닌가 결론내렸다.
지금 봐도 흥미있는 영화다. 비트는.

북두신권은 중학생 시절 눈물 흘리며 봤던 만화였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만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일.
나는 다시금 이 만화를 보면서 내 중학생 시절의 감동을 느끼고 싶었었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북두신권 속에는 지난 날 느꼈던 감동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보편적으로 영화든 만화든 한 번 보면 끝까지 보는 편임에도
북두신권은 내가 끝까지 보는 데 필요한 인내심을 능가하는 유치함을 지니고 있었다.



요 며칠은 영화 비트나 슬램덩크, 오디션, 북두신권 같은 만화를 보며 소일했었다.
그리곤
나는 여전히 추억에 빠져있구나 생각하였다.



작년 사무실을 옮길 무렵
고이 간직해 두었던 초콜릿이 다 녹아있었다.
그해 발렌타인데이에 받았던 그 초콜릿을 나는 먹지 않았었다.
무엇이든 추억이 깃들어 있던 것들은 나는 그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는 성향이 있었던 게다.

이것은 여전하다.
올해 받은 초콜릿 역시 그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살아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모두 먹어치우기로 결심한다.

형님이 하나만 먹자고 그렇게 졸라도 냉정히 거절했던 그 초콜릿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날, 특별한 의도도 갖지 않은 채
그냥 소멸시켜 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된 초콜릿은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초콜릿을 준 그녀들은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하여 누군가에게 초콜릿을 줘야만 했고,
나는 운 좋게도 그것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에게는 초콜릿을 주는 것 자체가 의미였지,
그것이 내가 되든, 아니면 지금 사랑하고 있는 다른 남자든 그건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이 내가 아니라면 거리의 노숙자에게 초콜릿을 주었을 거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의 그 유한성을.

그녀들은 당시에 나를 사랑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내게 초콜릿을 줄만큼은 사랑하거나 좋아했을 것인데
그녀들은 그렇게 내년 발렌타인데이에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줄 것이다.

이것은 시기의 선택 같기만 하다.
나는 이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기에 초콜릿을 주는 게 아니라
지금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기에 초콜릿을 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연하다.
고작해야 초콜릿 하나 주는 일인데 그깟 일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라고 하는 것도 넌센스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히 않은 것은 나에게 있다.
나는 이 영원하지도 않은 사랑의 증거, 그 추억의 초콜릿을
아무런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영원히 간직하려 했던 게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공간을 비워야만 한다.
나는 아무 것도 쥐지 않은 채로 새로운 것을 잡아내야 한다.

유한한 존재인 고작해야 인간이
무한적인 신의 영역을 탐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느끼고 있지만
아직은 영원하고, 유일적이며, 완벽하길 꿈꾼다.

- achor WEbs. achor



자. 하는 김에 담배도.
형님께서 외국 갔다 사다주신 영국산 담배도 예외 없이 훼손을. --;


아. 사실은 밤에 담배도 떨어지고, 초콜릿도 너무 먹고 싶어서,
게다가 돈도 없고, 편의점까지 나가는 것도 귀찮고... 이래저래... --;


본문 내용은 8,18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s://achor.net/board/diary/622
Trackback: https://achor.net/tb/diary/622
RSS: https://achor.net/rss/diary

Share 밴드공유 Naver Blog Share Button

 형님2002-07-08 01:32:14
너무 하네. 하나도 안주고...

Login first to reply...

Tag


     
Total Article: 1963, Total Page: 273
Sun Mon Tue Wed Thu Fri Sat
  1
초콜릿 [1]
2 3
정책세미나에 다..
4
정영의 합격
삶 [1]
5 6
7 8
칼사사여! 영원.. [3]
9 10 11
삼각김밥 [1]
12 13
14 15
옛 컴퓨터 [2]
16 17 18
드라마 [8]
19 20
칼사사 2002년 8월..
21 22 23 24
먹고 사는 일에.. [3]
25 26
도시에서의 사랑
27
28 29 30 31
일본에 갑니다 [3]
     

  당신의 추억

ID  

  그날의 추억

Date  

  Poll
Only one, 주식 or 코인?

주식
코인

| Vote | Result |
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