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2003-05-03)

작성자  
   achor ( Hit: 1902 Vote: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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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황금 연휴를 맞이하여 멋진 초여름 여행에 대한 환상은 왜 나라고 없겠느냐만
연이어 피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교수님과 약속된 수업, 예비군훈련, 그리고 오늘은 할아버지 제사.

yahon과 제수씨, 그리고 yahon의 중요한 친구들 둘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자정, 제사를 앞두고 집에 가봐야만 했지만 얼큰하게 취한 yahon은 나를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다.

내 입장은 확고했다.
나는 집안 일이라면 꾸벅 죽는 셈이었기에 어떤 중요한 일이 있든 간에 할아버지 제사에 반드시 갈 생각이었고,
yahon은 일전에 자신의 외할머니 제사에 내가 의리를 빌미로 막았었다던,
나는 기억나지 않는 일화를 예로 들며 자신을 납득시키고 가라고 주정을 부리고 있었다. --;

나는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지난 시절 우리가 함께 주창하던 의리, 우정 등의 그.딴.것들을 다시금 이야기 한다는 사실에 아주 만족했다.
하긴 그렇지만 그러고 보면 과거 내가 말했던 의리나 우정은 막내의 어리광, 괜한 고집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고집과 아집을 의리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강요했던 건 아닌지 한 번 반성해 봤다.

나 때문에 제사가 30분 여 늦어지긴 했지만
나는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에 yahon에게 곧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후 떠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곤 1시간 내에 왕복 및 제사를 끝내고 다시 술자리.

우리는 술을 꽤나 마셨는데
yahon의 중요한 두 친구는 이미 뻗어버렸고,
나는 yahon에 비한다면 그리 많이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컨디션 난조로 인해 오랜만에 술에 의한 구토를 하기도 했다.
반면 yahon은 놀라울 정도의 주량을 다시금 선보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미 완전히 취해 더이상 술을 마시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잠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되살아나는!
좋다. 불사신의 타이틀은 네게 주마. 패배를 인정하마.

그러나 우리는 술에 취해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1차적으로 그간의 내 행동과 말, 또한 기본적인 사고가 완벽하지 못했음이 실수였고,
2차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언급된 것은 yahon의 실수였으며,
3차적으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간 건 나의 실수가 되겠다.
그 눈물에 대해서는 꽤나 화가 나는 일이고,
또한 이것이 두 번째의 일이라는 게 더욱 화가 나는 일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잘못인 셈인 데다가 yahon 또한 자신의 집이라는 편안함과 엄청난 양의 술이 없었더라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을 알기에
별다른 아쉬움은 없다.
그러나 부디.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

약간의 실수들이 있긴 했지만 yahon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아주 기분 좋은 자리였다.
나는 사실 그런 자리를 지난 7년동안 꿈꿔오고 있었다.
1997년 롯데월드에서의 만남 실패 이후 결코 오지 않고 있던 기회를 우연찮게 맞이할 수 있었다는 게 기분 좋았다.
물론 1997년의 풋풋함 대신
이제 몇 년 후의 일상을 먼저 경험해 보는 느낌이 컸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만족스러웠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80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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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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