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첫 날 (2003-05-29)

작성자  
   achor ( Hit: 1154 Vote: 10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1.
마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일본여행 때 썼던 그 가방을 다시 꺼내 옷가지를 몇 챙겨넣고,
칫솔이며, 면도기며. 가재도구들도 넣어둔다.
오직 논문을 쓸 관련서적과 수업에 쓰이는 교과서만이
내가 지금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는 걸 상기시켜 줄 뿐이다.

출발의 모습을 몇 장 찍어놓긴 했지만
지금은 카메라의 데이터를 가져올 수 없어서 훗날의 수정을 기약해 둔다.

새벽 2시 30분.
나는 2년이나 되어가는 아처웹스.를 나서며 묘한 감흥에 휩쌓였다.
나는 이것 또한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게다.
어쩌면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는 아주 거대한 여행.



2.
그러나 그런 감흥도 잠시.
역시 일상은 이상과 다르다.

9시부터 12시까지 계속된 수업을 듣고 나니
밤잠을 못 잤던 여파가 그대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피곤함은 하루종일 나를 기운 없게 하였고,
결국 나는 오늘 내내 정규와 스타나 워크밖에 하질 못했다.

곧 내일 마감인 졸업논문 두 개, 그리고 모레에 있을 한문 졸업시험에 대한 대비는
앞선 거대한 감흥과는 달리 전혀 이뤄지지 못한 게다.

이제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좀 써보려 하지만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



3.
막상 이렇게 떠나와서 살펴보니
공부를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겠구나 실감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집 떠나와 있다는 게 사실은 좀 불편할 수밖에 없겠고,
또 오늘 처음 접해 본 몇 고시 관련 서적과 신문, 문헌 등은 내 생각 이상으로 지루하고, 졸렸다.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타인들의 실패담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4.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만큼 가볍게 물러설 것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나는 한문 졸업시험이 끝나는 이번 주말이 지나고 나면 돌아서게 될 지도 모르겠다.

비단 공부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만사가 몰입하고, 열중할수록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가볍고, 경쾌하게 아니다 싶으면 쉽게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방관하듯이 살짝 발만 담구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 사랑에 있어서도 미련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지 않았던가.



5.
아직은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좀 색다르게 놀며 보낸 하루지만
어쨌든 이렇게
내 외도의 첫 날이 간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846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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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oob2003-05-30 06:40:22
그냥 그렇게 지나간 오랜만의 외도에서 작지만 소중한, 새삼스럽지 않지만 신선한 많은걸 가지고 오길.

 annie2003-05-30 15:10:07
아...눈뜨고는 못봐주겠어요. 어쩜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

 achor2003-06-01 17:49:33
http://empire.achor.net/acboard/acboard.php?id=travels&m=v&num_seq=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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