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 (200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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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111 Vote: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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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최근 미국과 이라크의 포로 학대 문제도 있고,
또 어제 CATV에서 8mm라는 영화를 다시 봤더니 음. 뭐랄까.
이토록 잔혹한 일이 2004년 현실 속에 있다는 게 새삼 놀랍기도 하고,
또 2004년이기에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

과거 엽기,라는 단어가 지금과 같이 친숙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고,
사이코적이라는 본의로 쓰이던 시절
나는 잔혹한 영상물을 즐겨 보곤 했어.

그 중에는 자동차 사고 등과 같이 고의적이지 않은 것도 있었고,
스너프 필름도 있었고,
또 역겹고 변태적인 성적 음란물도 있었더랬지.
당시 내 여자친구는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그런 영상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천벌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할 정도였다니깐. ^^;

그런데 이런 일들이
너무도 유명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는 거야.
잔혹하다거나 징그럽다는 느낌보다는
현실이라는 게 더 충격적이야.

산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모습은
내가 당시의 영상물에서 보았던 산 흑인 아이의 팔과 다리를 자르던 백인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았어.
어떤 목적 속에서 연기를 하거나 가공된 게 아니라 실제로 자르고 만 거라고.

나는 신기했어.
2004년.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인간이 최악의 경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이미 교육을 통해 수 년간 세뇌당해 오는 지금의 인간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 고작해야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셈이야.

그러나 이내 다시 깨달았어.
그것이 2004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자극이라는 것은 진행될수록 내성이 생기는 법이라서
이미 나와 같이 잔혹물을 수 차례 보아온 2004년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보다 큰 자극이 필요했던 거였어.

일제 시대에 한국인의 목을 자른 일본인의 그 행위는 무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2004년 미국인의 목을 자른 이라크인의 그 행위는 무뎌진 자극의 탓으로 돌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

어쩜
2014년에는 누군가가 누군가의 목을 자른 후에 잘근잘근 씹어먹는 걸 전세계에 보여줄 수도 있을 지 모르겠어.
이젠 고작해야 인간의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별로 자극적이지 않게 될테니 말이야.



오늘 뉴스에는 섬에 팔려간 여성의 이야기가 나오더구나.
초등학생 시절 선데이서울에서 본 이야기가 아니고
2004년 MBC 뉴스에 나오는 얘기야.

인간이 인간을 신뢰한다는 것,
이 사람 또한 나와 같겠구나, 나와 비슷한 양심이 있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란 신뢰는
여지 없이 무너졌던 거야.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43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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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oob2004-05-16 18:16:37
너무 자극적이고 살벌한 글이군. 그게 2004년의 현실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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