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2004, Start 2005 (2004-12-31)

작성자  
   achor ( Hit: 1372 Vote: 19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Etc

1.
올해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글을 적으려고 옛 글들을 보니
지난 2003년의 흔적만이 남아 있지 않다.

스무 살부터 그저 그런 얘기지만 스스로 의미를 두고 남겨왔던
생일과, 연말연초의 글 둘 다 없다.

2003년에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마도 기억컨대 별 일은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저 지금보다 열정이 조금 더 있었던 것 같고,
그리고 학점 때문에 분주했었던 것 같다.

분명 기록 하나 남겨둘 만큼 바빴던 건 아니었을텐데
나는 한 해 정도 기록이 없는 것도
그 자연스러운 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뭐 큰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올해든, 지난 해든, 또 지지난 해든.
남겨질 기록은 그저 그렇게 비슷비슷할 것이 분명하니.

색다른 각오나 새로운 결심 따위는
근 몇 년간의 내 삶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2.
내 손금의 생명선이 짧게 변화된 것을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냥 적당했던 것 같은데
문득 본 내 생명선은 아주 짧게 변해 있었다.

물론 생명선 따위의 미신을 깊이 신뢰하거나 신봉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일찍 죽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생명선이 굳이 짧다고 하지 않더라도
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기에
미신에 관련된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언을 남겨놓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봤다.

가진 것 별로 없는 내가 남겨줄 유산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니
그대가 나의 죽음을 열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유언을 남기게 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돌이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게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는 평상시에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인터뷰를 한 꼬마 아이는 유언에 자신의 인형을 무덤에 같이 넣어달라고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 꼬마에게는 인형이 가장 소중한 보물일지라.

내가 꼬마였던 시절에
나에게도 인형이 아주 소중한 재산이었던 적이 분명 있었다.
나는 남자 아이치고 많은 곰인형을 갖고 있던 편이었는데
그 중에는 선물 받은 것도 있었지만
용돈을 모아 내가 직접 산 것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정도로 곰인형을 아끼고 있던 것이다.

그런 인형들은 내가 머리가 커져감에 따라
베개로 종종 쓰임을 당하더니 결국은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게
내 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 때의 보물은 한 때의 쓰레기가 될 수 있다는 증거였다.

유언을 쓰게 된다면
나는 그 순간의 가장 중요한 보물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내게 소중한 것인지 인식하는 것은
내 삶의 열정을 되살리는 데 작은 불씨가 될 지도 모르겠다.

유언은 내게 있어서
죽은 후를 대비하려는 의미라기 보다는
산 삶을 정돈하기 위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2004년은 기억 없이 사라지고 있다.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색다른 이벤트도 없었다.
길고 장구했던 대학생활을
9년만에 끝냈다는 게 기억이라면 기억이랄까.

지금 생각나는 건
나는 착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에 약한 사람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사실 정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않고 있지만
나는 내심 그 정들 때문에 홀로 괴로워 하는 경우가 많았고,
올해는 유독 그랬던 것 같다.

이 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우유부단하게 만드는 주범인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올해 나는 매몰차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끌려 다니기 보다는
2005년에는 좀 냉정하고 싸가지 없게 굴어야겠다.
그대는 이미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만. --;



4.
이제 29이다.
놀라울 뿐이다.
언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것일까.

내 느슨한 삶은 모든 현대인들이 바라는 그런 삶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위기감을 피할 수는 없다.
지난 30년간 내가 꿈꿔왔던 삶을 대충이나마 이뤄낸 나인데도
어찌하여 삶에 대한 공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
나조차도 의문이긴 하다.

분명한 건
이것은 내가 꿈꿔오고 추구해온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부심을 갖기엔
불안함이 너무 크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78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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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4/20/2026 21:3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