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은 매일 아침 꺼진다 (2006-09-27)

작성자  
   achor ( Vote: 12 )
분류      개인

1.
노래방에서 나오니 5시 50분 남짓이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이 시간이면 이미 대낮처럼 환했는데
어느덧 벌써 시월이라고 아직 좀 어둡다.

이런저런 인사치레를 마치고 집 근방에 도착하니
6시 5분 즈음.
고작해야 15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건만
세상은 이미 환해져 있다.

시월도, 새벽도 너무 급작스럽기만 하다.



2.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발을 좀 저는 한 남자가 내 앞을 걷고 있다.

운동이라도 하는 것일까,
불편해 보이는 그 모습이 조금 안스러워 보고 있으려니
그 남자는 어쩌면 근무를 하는 중이었나 보다.

거리의 가로등이란 가로등은 그가 다 끄며 지나간다.



3.
나는 이 수많은 가로등이 누군가에 의해 꺼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수없이 가로등을 지나쳐 왔으면서도
누군가 이것을 아침마다 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던 터다.

사실 과거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주변 조명도에 의해 자동제어 되는 스위치에 대해 배운 것 같기도 하다.
아침이 되면 자동으로 가로등은 꺼지게 되어 있어서
굳이 일일히 직접 끄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에 다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과거의 학습도 있었기에
누군가가 가로등을 끌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한 나라 해도 무결할 수밖에 없다.

분명 내 과거의 지식은 사실일 것이다.
고속도로나 산악지역 등 정차나 통행이 극히 힘든 지역도 분명 있을테니
매일 아침마다 가로등을 직접 끈다는 것은 여전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남자는 어쩌면
국가에서 마련해 놓은 제도에 의해 공공근로의 임무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냥 생활금 보조를 해줘도 되지만 근로의 보람을 알려주기 위한 한 장치의 의미로서.
자동제어 스위치보단 그냥 스위치가 더 쌀 테니
일부 가로등에만 공공근로를 이용한다면 가로등 생산 비용 절감 효과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 가로등들은 곧 저절로 꺼질 것이었음에도
그 남자가 먼저 꺼버린 경우일 수도 있다.
그 남자는 공공의 재산을 내 것과 같이 생각하는 철저한 공공정신의 소유자로서
아침 운동 나온 길에 봉사도 하며 보람을 찾고 있던 것일 수도 있겠다.



4.
뭐 어쨌든 그 남자의 사연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이 땅의 많은 가로등들은
누군가에 의해 꺼질 수도 있음을 알게 됐으니.

일찍일찍 귀가하자. --;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151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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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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