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시대, 한지승, 박연선, 野澤 尙, Yellow, 2006, 드라마, 한국
1.
좋은 드라마라는 건 2006년 봄에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때를 놓친 드라마를 본다는 건
그 방대한 양 탓에 적잖은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나는 언젠간 봐야지, 하며 근 18개월동안 연애시대를 고이 간직하고 있었고,
며칠 전 문득, 봐야할 아무 이유도 없던 그 새벽에,
연말에, 합병에, 더카마엘플러스에, 등등으로 유독 바빴던 그 때
2년 전 겨울로 돌아갔다.
드라마를 다 보곤 생각했다.
나는 이 드라마를 조금 더 일찍 봤었다면 좋았겠다고.
사랑에 서툴렀던 1990년대 후반 즈음에 봤었다면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2.
이미 일본 원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령 몰랐다 해도 나는 단번에 이것이 일본의 감수성이라는 걸 느꼈을 게다.
연애시대는 적잖이 Mitsuru Adachi의 작품들과 닮아 있었다.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기에
자살한 원작자 Nojawa hisasi 탓인지, 아니면 한지승 PD나 박연선 작가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뚝뚝하지만 속이 깊은 남자주인공, 땍땍거리지만 가슴이 따뜻한 여자주인공,
그리고 엉뚱하면서도 정이 있는 주변인들과 주변인들의 우연찮은 사고로 발생하는 이벤트 등
인물, 사건, 진행 모두에서 Mitsuru Adachi의 순수하면서도 따스한 감수성이 느껴져 왔다.
드라마는 사랑을 이야기 했다.
여전히 사랑했지만
서로를 보면 나쁜 기억이 떠올라 더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별을 했고,
이별을 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던 그들을.
그리고 드라마는 행복을 이야기 했다.
순간의 시간에는
행운과 불행이 모두 매복하고 있기에 슬퍼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흐르고 나서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보잘 것 없던 일상까지도 흐뭇해 지는 법,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그 순간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고.
행복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슬프고 괴로운 일상 속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3.
시간, 기억, 사랑, 그리고 행복에 관한 드라마의 깊은 성찰은
나를 충분하리만치 매료시켰다.
드라마는 이미 알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하며 헤어졌기에 영원할 수 있었음을.
동진과 은호는 사랑하며 헤어졌고,
그 사랑이 일상의 무뎌딤에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기에 서로에게 미련을 가질 수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면 죽은 아이가 떠올라
앞으로 행복해 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이별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별한 후에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들이 기억이 되면
순간의 고통, 슬픔과는 상관 없이 잘 각색되어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그러기에 때로는 사랑이 사람을 아프고, 괴롭게 한다 해도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해 지려고 해야한다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산다는 건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초등학교 5학년 문집속에서 본 나의 꿈은 타인의 꿈처럼 생소하다.
그 글을 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같을까?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지난 날의 보잘것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때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071214 시간, 기억, 사랑, 그리고 행복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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