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도 법인가 (2009-01-23)

작성자  
   achor ( Hit: 2664 Vote: 6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Dura lex, sed lex.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많지만
아무튼 소크라테스는
무려 2400년이나 이전의 시간에 말했다.

미네르바란 화두를 지나 용산참사를 연이어 맞이하는 요즘
유독 생각나는 말이다,

악법도 법인가.


전적이진 않겠지만 교육의 탓이 크다.
나는 기본적으로 법치주의를 숭배하는 쪽이다.
기본적인 질서는 유지되어야 하고,
사회정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개성과 다양성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전체가 고달플 것이 예상됨에도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 하는 이를 싫어하고,
다수를 생각하지 않는 개개인의 개성을 경멸하는 쪽이다.

네 개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체(에 속해있는 나)의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전체주의자는 아니나 타인을 배려하는 바탕 위에서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거라고 치자.


그러기에 나는 사실
미네르바를 맞이함에
꼭 그의 편에 서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자유, 특히 네트웍 공간에서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는 입장이기에
국가의 오버는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허위사실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또 다른 제2, 제3의 미네르바가 생겨날 것이고,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했다.

비록 미네르바가
국민, 특히 의식있다고 자타칭 여겨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악의 공적인 이명박 정부에 딴지를 걸고 있었기에
소영웅화 되어 있었지만
그의 행위 중 일부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라 판단했다.

당연히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인터넷 댓글 쓰는 걸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
또한 미네르바의 행위 전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이미 미네르바라는 인물은
인터넷 공간에서 경제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여론을 형성할 만한 위치에 있었고,
후에 큰 틀에서 비슷한 정부의 행동이 있었다 해도
사건의 핵심인 환전중단이나 달러 매수 금지가 문제였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그로 인한 국가 공공기관 및 일부 개인의 피해도 있었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구속까지 시킬만한 사안이었다는 데까지 공감하는 건 아니다. 매우 과했다고 본다.)

이로 인한 자유로운 인터넷 여론, 언론자유의 보장은 나 역시도 우려된다.

한 마디로 언론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나
그 언론의 자유가 허위사실의 유포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면 일정 부분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라 치자.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철거민들은 망루에 올라서는 안 됐다.
악법도 법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지급된 보상금을 받고 순순히 이주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회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사회정의란 말인가.
용산참사는 미네르바 사건과는 달리
내게 사회정의를 의심하게 했다.

다수의 동의 속에서 다수의 이익을 위해
원치 않는 소수의 피해를 강제하는 것이 사회정의라는 말에는
어떤 식으로든 공감할 수 없었다.

철거민, 그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가.
돈 없어서 집이 없었고,
그리하여 다수에 의해 힘들지만 그럭저럭 살아온 터전에서
적절한 보상도, 대책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기에 반발했다면
돈 없는 것은 사회정의를 해치는 원죄라도 된단 말인가.

이것, 분명히 법률이 잘못된 것이다.
다수 이익을 위한 소수 피해의 강제는 자유민주공화국인 이 땅의 기본 이념과 맞지 않는다.

전철연의 행동이 잘 한 것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건 아니다.
단지 악법도 법이라며 주어지는 처분을 그대로 수용만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단순 수용만 이어진다면 개선과 발전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간 스스로 진보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미네르바, 그리고 용산철거를 거치면서
내가 원래 진보가 아니었거나
혹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변했거나
둘 중 하나임은 느꼈다.

어쩌면 지금 나는
20대 초반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며 가장 싫어했던 그 중도일 지도 모르겠다.

좀 혼란스럽긴 하다.
나름의 억울함으로 모두가 주어진 룰을 따르지 않은 채 개개인의 생각만 주장하고, 불응한다면
사회적인 혼란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게다.

발전을 위해 적절한 반발과 불응이 있어야 할 것인데
모두가 그렇다면 애초에 질서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네가 이야기 하려는 해답은 알고 있다.
해답은 처음부터 주어져 있었다.

당연히 모든 걸 하나로 몰아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사안별로 따져 판단하면 된다는 것.

그렇지만 그것이,

네겐 쉬워보이는가?
정말 해답이 됐는가?

어쩌면 내가 진짜 진보이고, 니가 극좌파가 아닐까?
소크라테스는 정말 악법도 법이라고 했을까?

- achor


본문 내용은 5,71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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