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200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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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902 Vote: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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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      개인

나는 인간의 정신적인 질환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른바 '신경성' 씨리즈들,
신경성 변비라든가 신경성 탈모증 따위의 것들 말이다.
인간의 정신력은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다는 황당한 발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의 육체는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정신력을 극복하여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두고 싶은 것, 그 뿐이다. --;)

그런 내가 요즘 아마도 불면증에 걸려있는 듯 싶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애초에 불규칙적인 내 생활이 문제겠지만
요즘 작업 막판에 접어들어 갇혀 일한 것도 그 한 원인이 될 게다. --;
나는 이틀을 꼬박 새고서도 그 피곤함을 잠으로 연결시키지 못했었다.

물론 그러다가 한 번 잠이 들면 최소 12시간이다.
나는 죽은 듯이 꿈 한 번 상기하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잠을 잔다.

나의 화끈함이 마음에 든다.
잘 땐 자고, 일할 땐 일한다! 정말 대견하다! --v

사실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내 단기 삶에는 주기가 없어서 일어나서 그 다음 일어나는 시간까지가 내게는 하루다.
고정적으로 일별로 해야할 일도 없고, 특별한 약속도 별로 없다.
낮밤도 필요 없고, 나는 그저 내 생체리듬대로 마음대로 살면 된다.
이에 반하는 유일한 문제가 다름아닌 학교인데 요즘 도통 학교에 안 나가고 있으니 뭐 괜찮다.

그러나 잠을 자야한다는 압박감은 싫다.
일의 능률도 그렇다.
편히 자고 일어난 그 상쾌한 기분과 피곤에 찌든 그 느낌과는 작업능률이 전혀 딴판이다.
어떻게든 자야한다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도
예전처럼 눕자마자 잠들지 못하고 그저 뒤척이기만 하는 내 모습에 황당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이 불면증을 제외하면 요즘 새삼 내 삶에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그 만족감이 아주 좋다.
때로는 나를 포기할 수 있었던 내가 마음에 들고,
때로는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이른바 나의 정의를 찾기 위한 노력도 나름대로 값지게 본다.

나는 잘 살아왔다.
다시 산다 해도 이보다 더 잘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10대, 그리고 20대 초반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러워하던 모습이
이제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그 부러움의 삶을 능가했다는 자부심이 생겨난다.

1900년대 말 홍콩 영화의 허무감도, 신세대가 나풀거렸던 드라마의 화려함도, 성공 스토리 자서전의 영웅담도
나는 이제 내려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혹 월세도 못 내고, 매일 비굴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게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러이러해서 잘 살았다고 굳이 나열해 주고 싶지는 않다.
관점이 다르다면 내 삶은 혹자에게 암흑의 나날일 수도 있을 게다. !_!
그러나 나는 만족한다. 이것은 나의 최선이자 최고였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삶이었다.
나는 적당히 외로우면서도 적당히 가깝고,
적당히 빈곤하면서도 적당히 부유하며,
적당히 쓸쓸하면서도 적당히 함께 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쪼잔하고 싶지 않은 놈이다.
나는 '건곤일척'이란 말을 좋아한다.
나는 세상을 다 갖든가 나를 다 갖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하면 된다.

이왕 가질 거라면 도무지 한국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겠고, 세계를 지배해야겠다.
그렇지만 조금만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나를 지배하고 싶다.

나의 뜻대로, 나의 의지대로 나를 지배하여 내 삶에 만족하고 싶다.
물론 나는 여전히 절대적인 운명론자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215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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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