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예쁜 미용사 (2004-06-30)

작성자  
   achor ( Hit: 1329 Vote: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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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1.
한 달 남짓 되었으려나.

그 당시 나는 좀 외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그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머리에 안정환과 흡사한 파마를 함으로써 포인트를 주었던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나를 맡은 미용사의 선택이었다.
나는 그저 충분히 길어져 버린 머리카락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
그 예쁘장한 미용사는 내게 그런 파마를 권해 왔다.

나는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미용사 중 최고로 예뻤고,
그런 그녀가 내게 머리를 볶으라고 하는데 내 어찌 안 볶을 수 있으리오.

그렇게 얻어진 내 볶음머리는
지난 10일 남짓 진행된 학교 생활에 있어서
다소간의 인기를 얻어낸 후
기어이 오늘, 그 수명을 끝마치고 말았던 것이다...



2.
오늘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단골 미용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미용실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닌,
그저 가는 길에 있는 아무 미용실이나 들려 머리를 깎는 내게 있어서
예쁘장한 그녀가 있다는 하나의 조건은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좀 바쁜 편이라서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미용실에 갈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파마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듯 싶어
나는 고작해야 머리나 좀 깎을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미용실에 들어선 순간
그녀는 나를 곧 기억해 냈고,
그리곤 내게 파마 푸실거죠? 라며 경쾌하게 물어왔다.

여전히 나는 어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미용사 중 최고로 예뻤고,
그런 그녀가 내게 파마를 풀라고 하는데 내 어찌 안 풀 수 있으리오.



3.
서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두 번째 만남이라고
그녀는 사소한 장난을 걸어온다.
그녀의 얼굴은 예쁘면서도 어딘가 악동 같은 모습 또한 갖고 있는 형상이다.
그녀의 노리개가 될 수 있음에 행복해 하며
나는 살짝 짓는 미소만으로 그녀의 장난에 응해준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없던 탓에
다른 미용사들까지 몰려 들어 내게 장난을 건다.
뭐 기분 나쁠 거야 전혀 없지만
머리를 감겨 줄 때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감느라 나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뒤로 제끼고 있었고,
내 하늘을 향해 널부러진 얼굴을
여러 여성 미용사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은 어쩐지 꽤나 쑥스러운 자세였다.
나는 마치 많은 여성 관객 앞에서 내 은밀하고 부끄러운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리 나쁠 것은 없었고, 종국에는 즐길만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흘렀다.

내 나이를 묻는 그녀들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역시 내가 내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랄까, 혹은 컴플렉스랄까,
적어도 떳떳하게 나이를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임이 큰 이유일 것이고,
더불어 그 예쁘장한 미용사와 혹시라도 생길 지 모르는 러브스토리에 있어서
나이가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을 사전에 막아보려던 내 착각 속의 과잉반응도 큰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질문에 비밀,이라고 답함으로써
그녀들로부터 미용실을 나올 때까지 시달려야만 했다.
물론 그 시달림은 다시 당한다 해도 거부하지 않을 행복함이긴 하였지만.
(또한 나는 결국 그녀들에 의해 25살로 추측됨으로써 무려 3년이란 시간차를 극복해 내는 저력을 발휘해 냈다. --v)



4.
아직 28살.
내가 말하기엔 자격이 없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사람 얼굴을 보며 이 사람은 어떨 것이라고 판단해 볼 수 있는 선입견은 생겼다.
그것이 비록 선입견,이라는 다소 나쁜 뜻의 어휘로 설명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게 있어선 괜찮은 적중률을 나타내는 낯선 사람을 판단하는 한 기준이 된다.

나는 그처럼 예쁜 미용사를 여지껏 본 적은 없지만
그녀처럼 생긴 여자들이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할 지
나름대로의 선입견을 갖고 있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도,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만남에서도
그녀답게 행동을 했다.

그녀는 분명 내심 자신이 적어도 밉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이 점원과 손님의 관계 속에서도 남과 여,라는 더 원초적인 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한
가벼운 장난은 남자인 손님으로부터 무엇이든 용인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렇게 자신의 미모를 바탕으로 남자 손님으로부터 인기를 착취해 왔고,
나 또한 그런 남자들과 아무 다름 없이
오늘 다시금 그 미용실을 찾아줬고,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모든 장난에 미소로 답해줌으로써
그녀의 확신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일조를 했다.

그런 그녀는 같은 손님일 지라도 만약 손님이 여성이라면
이와 같은 장난은 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무기는 성의 차이에서 발산되는 매력이기에
손님이 레즈비언이 아닌 한 그녀로부터 성적인 매력을 받을 리는 만무하다는 걸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화끈하고, 경쾌해 보이는 성격 또한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성적으로 예쁘다는 판단 위에서 성립된 호감이었을 뿐
성격만으로 그녀가 내게 점수를 딴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 역시
내가 남성 손님이었기에 다소간의 장난을 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비록 그녀와 나. 우리가 서로를 다른 이성으로서 인정을 한다 하더라도
잘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긴 하다.

그녀.
외적으로도 역대 최고의 미용사일 만큼 괜찮고,
비록 그 외향을 바탕으로 한 호감 어린 판단일 지라도 성격 역시 좋은 편이다.

어찌 보면 완벽해 보이는 그녀가
혹 내게 사랑을 고백해 온다 해도
나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외모가 여성을 판단하는 데의 전부였고,
또 언젠가는 성격이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상기해 낸다면
나이 먹어서 여성을 판단하는 데 이런저런 이른바 조건,만 늘어가는 것 아니냐며 비난 받을 수도 있을 것인데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가 나와 내가 살아온 삶과 내가 꿈꾸는 삶을 이해해 주고,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을 지에 관한 의문이
예쁘고 성격 좋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함을 주는 이유인 것이다.

물론 진실된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동화적 환상은 아직 내게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지만
그녀처럼 생긴 여성은 즉흥적인 것을 좋아할 가능성이 클 것이고,
그렇다면 즉흥적이지 않은 여성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더 귀찮고, 장구한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할 것이다.
물론 역시 선입견이다.



ps.
노파심에 몇 자 더 적어둔다.

우선 이것은 꽁트식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맡긴 채 아무 할 일 없이 앉아 그녀를 보며 생각했던 이야기를 쓴 것 뿐이지
결코 내 확보부동한 이념은 아니다.
나는 사실 선입견을 상당히 경계하는 편으로, 경험을 중시하여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것은 미용사에 대한 비난이나 비하 또한 아니다.
그 역대 최고의 미모를 갖춘 미용사에 관한 일이었지, 그녀가 미용사든, 간호사든, 교사든. 무슨 상관이람.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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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세: 후회 내지는 반성 혹은 쪽팔림 (2004-04-29 13:23:58)- 미용실: 머리도 하고... (2018-04-15 14:21:06)

- 28세: 그의 결혼 (2004-06-09 15:24:55)- 미용실: 동네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미용실에서... (2015-11-09 01: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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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