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 꿈을 꾸는가 (2006-07-13)

작성자  
   achor ( Vote: 6 )
분류      개인

1.
3년 전 오늘은 내가 이곳으로 이사왔던 날이다.
벌써 3년이네,라는 놀라움보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는 걱정이 앞선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미 시간은 흘러버렸고, 나는 뒤늦게서야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그토록 두려워 했던
30대의 두려움일 지도 모르겠다.



2.
3년은 역시 어떤 면으로도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27살에서 30살이 되어 있다.

내 정체된 3년을 함께 해왔던 친구가
기어이 지난 7월 초 떠나갔다.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남겨진 내 상실감은 생각보다 좀더 컸다.

나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힘겨운 결심을 한 채 떠나가는 그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그는 아직도 내가 갖지 못한 용기를 갖고 있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주전자로 침수하는 개미처럼,
나는 내 파멸을 알면서도 쓰러져 가고 있지만
그는 용기를 낸 것이다.

나는 결국 내 끝을 보고 나서야 뒤늦은 용기를 낼 수 있을 지 모르겠다.



3.
며칠 전 한 친구는 집들이를 한다고 나와 주변 친구들을 초대했다.
대방동에 차려진 그의, 아직은 신혼집은 정말이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너무 잘 살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가 잘 살아갈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넓고 깔끔한 집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공조체제까지도 포함하는 놀라움이었다.

아무 것도 없이, 사사로운 혼수품 대신 지난 2년을 꾹꾹 모아
그 짧은 시간만에 결국은 달성해 낸 그의 집은 나를 경악케 했고,
말로만 떠들던 가정에서의 성평등을 몸소 실천해 내어
설거지며 빨래, 청소며, 남녀 구분 없이 함께 해나가는 모습은 정말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자신 없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기에,
총각 시절 나와 그토록 술 속에서 밤을 지내던 그,
이제는 술 마시는 일이 연중행사로 변해버린 그는.

그래서 행복할까.
과거를 그리워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나는 그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4.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이제는 의사며, 검사며 되어있는 친구들은 이미 한껏 취해있는 상태다.

의사 녀석은 학창시절에도 그리 뚱뚱하더니만
지금도 여전하다.
검사 녀석은 학창시절에도 그리 못 생겼더니만
지금도 여전하다.

어쩌면 그들이 지금까지 많은 인내 속에 참아왔던 시간의 대가로
앞으로 나보다 훨씬 더 좋은 미래를 살아갈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
미래를 담보잡아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류시화가 인도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했듯이
많은 현대인들은 내일의 시간을 위해 오늘의 시간을 희생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벌써 30년이나 살아왔던 것이다.
지난 30년, 나는 그들보다 더 늘씬한 몸매와 더 잘 생긴 외모로
보다 유쾌한 삶을 살아왔으니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따라오는 생각,
그것은 그저 나의 자위일 지도 모르겠다.



5.
너무나도 유한적이고, 또한 그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삶에
화가 났다.
삶의 너무 많은 부분들이 단편적이고, 순간적이다.
영원, 불변, 지속가능 따위의 단어는 애초에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이상을 꿈꾸기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버렸다.
항상 경계해 오고 있었다.
비버 잡는 법을 드디어 알게 된 에스키모가
그 때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버려 잡을 힘을 잃어버리는
성석제의 우화 속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그 이야기를 머리 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
왜 이토록 이상이 남아있단 말인가.
왜 아직 사랑과 삶에 꿈을 꾸며 남겨져 있단 말인가.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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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Empire2017-06-20 01: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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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부터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의 광풍을 바라보며 생각마저도 늙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전 재산은 아니더라도 모험을 거는 일에 주저함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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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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