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욕 (200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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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513 Vote: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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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D      개인

1.
집을 나설 때 이미 비라도 내릴 것처럼 우울한 하늘이더만
결국 돌아올 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버스에 올라 탄다.
창문에는 버스운전사를 폭행하는 행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문득 나 자신이
대개는 이해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나는 역지사지란 말을 가장 좋아해 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발효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살인을 한 아내는 감싸 주고, 힘이 되어 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바람을 핀 아내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것.


곰곰히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은
고작해야 자존심, 좀 더 아량을 배풀어도 배신감 정도의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정말 그것이라면

심하다.

삶의 중차대한 일이
고작해야 자존심 내지는 배신감의 지배를 받아야 하다니...



2.
좀 된 이야기지만,
어느날 아침, 밥을 먹다가 CATV를 통해 방송되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를 너무나도 감명 깊게 보게 됐다.

그 감명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나는 바로 내 최고의 영화로 그것을 꼽게 됐고,
또한 바로 인터넷을 통해 이만교의 원작 소설까지도 주문할 정도였다.
아무튼 최고였던 게다.

물론 나는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02년에도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주 늦은 어느 밤, 사람이 그닥 붐비지 않던 종로의 한 곳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애인이자 친구인 사람과 맛있는 커피를 마신 직후.
http://empire.achor.net/acboard/acboard.php?id=ae_munhwa&m=v&num_seq=176

내겐 이 영화가 다시 봐도 어려운 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사진이 상징하는 의미와 마지막 결말의 모습에 나름의 판단을 했으면서도 혼란스러워 했고,
그래서 평론가들의 해석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영화와 문학에 조예가 깊은 olivesup을 통해,
그리고 이만교의 원작 소설을 통해
그 혼란의 적잘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소유욕이었다.

결국 자유연애를 꿈꾸던, 다부다처제를 지향하든 상관 없다.
결국 인간은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하는 대상을 독점하고픈 욕망을 갖게 되고,
그것은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내가 영화, 그리고 소설을 통해 얻은 결론이었다.


사실은 너무나도 극복하고 싶었던 그 소유욕인데
그것은 내 의지보다도 더 큰 그릇에 담겨있는 것만 같다.



3.
형님과 일을 한 이후 외부 프로젝트를 뛴 적은 없었다.
초기 지인들을 통해 제안이 들어와도 다른 사람을 소개시켜 줄 정도였다.
아주 중요한 취미를 갖고 있는 내게
이미 평안한 삶이 유지되는 환경 속에서라면
더 큰 욕심으로 내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말로는
대충 먹을 것 있고, 놀 돈 있는데 더 일하는 건 싫었다는 게다.


형님이랑 일한 게 어느덧 만 4년째이니
외부 프로젝트를 하는 건 그 보다 좀 더 된 일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필요에 의해 덧 일을 하는 까닭이
좀 어이 없다.


목걸이를 사기 위해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프린테사 목걸이.

돈으로 무엇을 해결한다는 생각은 그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음에도
일전에 안타라스 귀걸이를 통해 예외를 만들었더니
조금 내성이 생겼나 보다.

용돈으로 쓸만한 거액을 모아놓았을 리 없는 내가
안타라스 귀걸이는 어찌 해결을 했지만
또 다시 2-30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프린테사 목걸이까지 마련하려고 하니 벅찰 수밖에 없다.


4년간의 침묵을 깬 이유가
고작해야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목걸이를 사기 위해서라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봐서는 나태한(그러나 바쁜) 내 삶에 활기를 준다는 점에서 잘 됐다고는 보고 있다.
또한 한 두 달 조금 더 일하고 목걸이를 수 개 살 수 있는 만한 돈도 벌 수 있을테고.


누가 뭐라 하든 이것은 나의 확실한 행복이다.
평안한 삶을 누리다가 필요가 있다면 좀 더 일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다만 현재의 행복 속에 미래는 없다는 건 여전히 내게 고민이긴 하다.

- achor


본문 내용은 6,45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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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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