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시험을 보고... (2003-05-17)

예상대로 시험은 죽을 쑤고 말았다.

문제는 결코 어렵지 않았다.
미시와 거시, 두 분야로 분리되어 출제된 이번 졸업시험은
경제학원론 수준에 머무는, 상당히 쉬운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그런 쉬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걱정도 좀 되고, 아쉬움도 좀 남지만
대개 그렇듯이 이 역시 내게 치명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뭐 괜찮다. 이 정도쯤이야.
이 정도쯤은 당당하게 감수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나는 좀 현실순응적인 편인 것 같다.



시험을 못 봐서 좀 우울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한편에서는 굉장히 상쾌한 느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추억어린 대학로의 토요일 아침 덕분이었던 것도 같고,
또 강의실에 앉아 학교가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문장들,
학술적이고, 학구적이며, 필요 없이 무게를 실어놓은 그런 시험 문장들을 보며
내가 학생이구나, 실감했던 데에서 기인했던 것도 같다.

아무튼 학생이 주는 그 포근함은 새삼 상쾌했으며, 경쾌했다.

언젠가는 산록이 푸르른 교정에 누워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잠든 시절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밀크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MILK의 어원 따위를 생각했던 적도 나 역시 있었는데 말이다.



여전히 아쉬움을 남기는 대학생활인 듯 하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85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s://achor.net/board/diary/806
Trackback: https://achor.net/tb/diary/806
RSS: https://achor.net/rss/diary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