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했던 건 아니었을까 (2002-12-06)

작성자  
   achor ( Hit: 2507 Vote: 26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얼마 전 이훈, 성유리 주연의 MBC TV 막상막하,란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가슴을 관통하는 뜨끔함이 있어 기록 남겨둔다.

드라마 속에서 세상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이훈에게
성유리는 결국 다른 사람처럼 세상과 싸우는 걸 겁내는 건 아니냐고 말한다.



내가 한 여자를 두고 총을 겨누는 서부극을 싫어하는 것도,
동양적 도가사상을 예찬하며 은둔과 안빈낙도의 삶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을 채찍질 하여 타인과 경쟁하고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하는 유치함의 단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패배가 잦아지면 패배에 익숙해 진다고 한다.
승부를 초월한 듯 행동하는 것은
어떤 이에겐 패배로 인한 스스로의 실망감, 타인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어설픈 연기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정해진 아침 시간에 일어나 매일 같이 출근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괴롭고, 귀찮을 일일 것인데
나는 마냥 어린 아이처럼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어딘지 근사해 보이는 핑계거리를 찾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간 내가 스스로를 사회적인 인물이라고 평해 왔던 까닭은
사건을 해결해 내는 것이나 사람들과의 깊지는 않지만 평이한 관계를 유지하는 어떤 테크닉적인 면에 기인했을 것인데
그것은 사회적인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놓친 것이었음을 실감한다.

정령 사회적이라면 세상 속에 동화되어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고, 경쟁하고, 협동하며
좋든 싫든, 잘 해내든 잘 해내지 못하든 사회 속에서 싸워나가야할 것인데
나는 너무도 비겁하게 많은 걸 피하려고 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런 드라마를 한 번 봤다고, 그런 생각을 한 번 했다고 내 삶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저 한 번 생각해 본 것 뿐이다.
한 번의 생각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온 꾸준한 내 삶의 철학을 한 순간에 뒤바꿀 수는 없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 삶이 나름대로 정의롭고, 가치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그간의 내 입장과 다른 관점에서 스스로를 살펴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020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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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oob2002-12-10 03:26:08
"너라면 잘 해낼수 있을거야. 아처라면.."
이런식의 글귀는 오빠의 홈피에서 많이 보곤 해.
물론, 나 역시 그런말들을 하곤했었지.
어찌하여 오빠가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신뢰를 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빤 실은 정말 어린애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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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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