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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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2309 Vote: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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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막대한 유산이 상속되었다 하여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에게는 그 가치가 의미 없을 것처럼
운명의 범주에는 '기가 막힌 타이밍' 또한 포함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

의도치 않게 들은 그 답변은 이견 없는 적절한 예였다.
그간 나는 나를 조금은 의심했었다.


나는 사랑, 그리고 결혼에 있어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채
결혼할 나이에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지극히 경계해 왔었다.

그것은 과거 내게 사랑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단 하나의 선택을 하고 싶었다.

결혼 후 바람 필 의사도 없고, 그러지 않을 자신도 있는 내게 있어서
그만큼 선택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사랑을 한다한들 결혼을 하든가 이별을 할 것인데

결혼하고픈 마음도 없었을 뿐더러
또다른 어딘가에 내가 더 사랑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의심을 하게 했고,
그것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자 하는 내게
막연한 가능성만을 내포한 채 실체 없는 존재로서 사랑을 의심케 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선택은 이별일 뿐이었다.
어차피 이별할 귀결이라면
사랑할 까닭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내 관념 속에서 섣부른 예단과 실체 없는 동경으로
사랑하는 것을 경계해 왔었던 것 같다.


물론 시공간을 초월하는 운명적인 사랑은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내가 초등학생 여자아이나 팔순을 넘긴 할머니를 보며
운명적인 사랑을 느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기에

사랑하는 것,
삶에 있어서 단 한 명의 선택을 취하는 것은
결국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에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시나브로 가져왔으면서도

의심스러웠다.


자기합리적인 것은 아닌 지.

운명의 범주에 시공간을 포함하는 것을
나는 이해는 했으면서도
확신을 갖는 건 좀 주저했었던 것 같다.


그의 답변은
그러한 내 주저함을 해결해 주는 기가 막힌 코멘트였다.

어쩌면
10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채 한 달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 그의 형처럼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 자체가 운명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achor


본문 내용은 5,724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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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goob2009-04-23 02:00:06
운명은 만들어 가는 것이고,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 왔고,
물론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 없어.
사랑도 인생도 참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이면서도,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가슴 뛰게 만드는 즐거운 일이기도 해.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 게시판에 글을 남기려다
몇 번이고 잘못된 접근이라며 나를 거부하기에 관뒀어--;

잘 자.


 achor2009-04-23 03:13:07
얼마 전 노잉(knowing)이란 영화를 봤는데
황당한 전개라는 평도 많은 영화였지만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무작위론과 결정론의 무게감은
사실 가볍고 황당한 것만은 아니었어.
이는 곧, 운명의 유무와도 일맥상통 하는 이야기 같아.

결정론자, 운명론자는 편안할 수 있을 거야.
삶이든, 사랑이든 어차피 그렇게 되어야 할 대로 되었을 뿐이라는 결론은 희노애락으로부터 당당하게끔 할테니.

반면 무작위론자, 비운명론자는
적어도 상대적으론 익사이팅 하겠지.
도전하고, 시도하고, 해보려는 의지는 환희를 주는 것과 동시에 좌절을 주기도 할테니.

편안한 휴양여행이냐, 익사이팅한 배낭여행이냐의 문제처럼
때때로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말야.

쉽지 않아, 그래도 다행인 건
뭔들 어때~

ps1. 영화로서 노잉을 추천하는 것은 아님. -__-;
ps2. 잘못된 접근, 메시지는 referer 도메인 문제인데 확인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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