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와 마주 서서... (200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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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818 Vote: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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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내 인생의 콩깍지,라는 드라마는
올인 이후 신문 연예란의 주된 화제였다.

신문들은 내 인생의 콩깍지,의 두 가지 요소에 특히 주목하는 듯 했는데
그 첫 번째 요소는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시도에 무게를 두는 뮤지컬 드라마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 요소는 다름 아닌 9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미 한희 PD의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을 본 바 있기에
어설픈 뮤지컬 흉내내기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지만
질투 등의 트렌디 드라마로 표현되던 90년대를
2000년대에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꽤나 궁금했었다.

그리하여 오늘, 술 취한 와중에서도 그 드라마를 보고야 만다.



아니나다를까 드라마 속에서는 터보나 쿨, 벅 등 젊은 시절을 함께 해온 가수들의,
추억의 대중가요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내게 어쩐지 어색하면서도 오묘한 감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젊음이 녹아있던 90년대가
마치 내가 80년대의 모습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봐온 것처럼
이제는 그런 추억의 시대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이기도 했고,
아직 내 기억 속에서는 엊그제 이야기 같은데
그것이 이미 10년이나 흘러버린 과거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시켜 주는 느낌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젊음, 그 한복판에 영원히 불멸할 것 같은 느낌으로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내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나는 원의 가장자리에서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기성세대의 자리로 밀려나고 있는 그런 느낌이기도 했다.

반가우면서도 서글픈 느낌이 동시에 묻어져 나왔다.



요 며칠 소개팅을 빌미로 꽤 나이 차이가 나는, 나보다 어린 아이들을 몇 만났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사실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나와 맞먹으려 했거나 혹은 위로해 주려 했던 그녀들이
영 어색한 느낌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비슷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비슷하게 사회에 발을 디딜 동기일 것이니
그간 동생들을 만나보지 못했던 내 경험의 미숙함 탓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흔히 하는 이야기처럼
84태권V를 모르는 세대, 그리고 88서울올림픽이 교과서 속에서나 존재하는 세대,
가수 부활을 보며 열심히 하셔서 조성모처럼 훌륭한 가수 되세요, 라고 이야기 하는 세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통 감을 잡지 못하겠다.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에는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었다.
내가 누군가 동경의 눈빛을 갖고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는 모름지기 나보다 나이가 많았어야 했고,
또한 동시에 나 역시도 그들과 비슷한 나이가 된다면 그 동경의 자리에 당연히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모든 문제의 열쇠인지라
그럴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고,
또한 연예인이 나보다 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줬다.

지금, 시간은 내게,
다시 한 번 커다란 수용을 짙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여지는 90년대, 내 젊음의 기억들을 추억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간과 마주 서 있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7,886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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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gaJ2003-04-22 11:55:03
아...정말 맘에 와닿아..
마저마저..그런거야... 그런게지.... T.T
이곳에 와서 수많은 80년대생들을 몇년동안 접하고 있지만, 난 아직두 어떻게 대해야할지를 모르겠어. 난 분명 늙지 않았는데..걔들에겐 그게 아닌가바...
정말 요즘엔 더더욱 동갑내기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annie2003-04-22 14:01:50
한 명 더 남으신 거 잊지 않으셨겠죠...-.-;;;
물리치려 했으나..이미 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더군요.. 피곤해서 입술에서 피가 났다고 하신 말씀...가슴에 조각을 새깁니다... 시간 충분히 갖으셔서 5월에 하시고....

저또한 맞먹으려 한 이들중에 하나였음을 고개 숙여 느낍니다...

글쎄요..80년 미만의 세대, 그것도 76~79 사이에선 저희들은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저희들의 오만 혹은 무지의 결과 일 수도 있겠네요.
우린 여전히 "조금의 접한 시대(?)와 문화 차이는 있겠지만, 똑같이 인식하고 같은 공간, 시간을 살아간 날들이 많았고 많을거잖아?" 라고 말합니다.

차이의 구분의 고집보다...

맞먹으려 했다거나 했거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이해해 네 상황을, 조금은 어렴풋이.
라고 하는 것은,
고개 숙입니다.

시험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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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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